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의결됐다. 연합뉴스
최근 8년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등록 아동 2123명에 대한 정부 전수조사가 이뤄지면서, 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숨진 아이들의 비극적 사연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넘겨받은 사건은 모두 95건인데, 3일 오전 기준 9명의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 친모가 갓 태어난 아기를 살해한 뒤 냉장고에 유기한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전국 곳곳에서 ‘유령 아동’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비극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정부·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 추진에 속도가 붙고 있는 가운데,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 도입 여부를 두고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앞서 여야는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료기관이 출생정보를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를 통과시켰다. 출생통보제 도입은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하더라도 정부가 아동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출생통보제가 미혼모 등 신원 노출을 꺼리는 이들의 병원 밖 출산을 늘릴 수 있다며, 보호출산특별법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친생부모의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고 아동이 친부모를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일부 내용을 보완한 수정안을 냈지만, 법안의 뼈대는 그대로라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 출생등록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겨우 뗐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호출산제는 매우 신중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신원을 숨기고 출산한 친생모가 7일 뒤 지자체에 아이를 인도할 수 있고, 이후 입양 절차가 진행된다. 임신·출산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공적 지원 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탓에, 자칫 ‘원가정 양육’ 대신 ‘입양 아동 양산’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또한 해당 아동은 성년이 되어야 자신의 출생증서 열람을 청구할 수 있는데, 친생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의 인적 사항은 볼 수 없다. 이는 입양을 보내는 부모가 실명으로 출생신고를 하도록 한 현행 입양특례법을 무색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제도는 ‘최후의 수단’으로만 고려할 것을 권고해왔다. ‘위기 임산부’에 대한 더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살피는 일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