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사건’의 주심인 조은석 감사위원의 전자결재를 조작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한다. 앞서 주심위원 결재도 없이 이 사건 감사결과보고서를 공개해 물의를 빚은 감사원 사무처의 전횡이 점입가경이다. 정부기관의 전자결재 내용을 조작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감사원에 대한 수사를 통해 이번 사태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20일 <한겨레>가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감사원 사무처는 지난 9일 주심인 조 위원이 이 사건 감사결과보고서를 결재한 것처럼 처리하기 위해 감사원 전산 담당 부서에 지시해 전자결재시스템의 주심위원 결재란에 ‘승인’이 기재되도록 했다고 한다. 주심위원의 최종 확인이 없는 감사결과보고서는 법률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국민권익위원회에 배부할 수도 없고 공개도 못 한다. 사무처의 ‘승인’ 지시는 이를 막으려는 무리수로 보인다. 조 위원은 당시 다른 감사위원들과 함께 사무처가 감사결과보고서의 최종 수정본을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최종 수정본을 열람도 못 했고, 당연히 승인한 적도 없다. 그런데 ‘승인’ 처리가 된 것이다. 그는 앞서 내부 게시판에 ‘주심위원이 경위를 설명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이런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전자정부법에는 ‘행정정보를 위조·변경·훼손하거나 말소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형법에도 같은 형량의 처벌 조항이 있다. 이처럼 전자결재시스템 조작 행위는 중범죄다. 그런데도 감사원에서 버젓이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기질 않는다. 최종 수정본이 감사위원 간담회에서 승인되기 힘들 것 같으니 이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감사위원회의에서 전 위원장 개인을 문책할 수 없다는 취지의 ‘불문’과 ‘기관주의’ 처분을 의결했는데도, 감사결과보고서는 전 위원장이 비위 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기록돼 있는 것이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최재해 감사원장의 태도다. 최 원장은 지난 19일 이번 사태 경위 조사 명목으로 감사위원들에 대한 ‘감찰’을 통보했다. 사태 원인은 유병호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처의 전횡에 있는데, 적반하장으로 감사위원들을 감찰하겠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지금 감찰기관으로서의 위상과 신뢰를 모두 잃었다. 수사기관의 강제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 위원장 고발 사건을 갖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당장 감사원에 대한 수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