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10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최고위원직 자진 사퇴 기자 회견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10일 당 중앙윤리위원회 징계 결정을 앞두고 최고위원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역사 왜곡 발언과 대통령실 공천 개입을 시사한 녹취록 파문으로 중징계가 예상되자 자진 사퇴해 징계 수위를 낮추려는 계산이다. 하지만 그의 사퇴· 징계가 공천 개입 의혹을 뭉개는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태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저의 논란으로 당과 대통령실에 그리고 우리 당원들에게 누가 된 점을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모든 논란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며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의혹에 선을 그었다. 모든 것을 다 떠안고 가면서 대신 ‘정상참작’을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1일 <문화방송>(MBC)이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그는 이진복 정무수석과 한 대화를 보좌진에게 전하며 “(정무수석이) ‘당신이 최고위원 있는 기간 마이크를 잘 활용해서, 매번 대통령에게 보고할 때 오늘 (태 최고위원이)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들어가면 공천 문제 그거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했다”고 언급해 논란이 됐다. 애초 당 지도부는 태 최고위원의 ‘실언’으로 마무리하려 했지만, 대통령실의 공천 개입 파문이 잦아들지 않자 서둘러 ‘손절’에 나섰다.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지난 8일 “정치적 해법이 등장한다면 거기 따른 징계 수위는 여러분이 예상하는 바와 같을 것”이라고 했다. 자진 사퇴하면 징계를 낮출 수 있다는 뜻인데, 논란을 빨리 종료하려는 지도부와 징계 수위를 낮춰 공천을 보장받고 싶은 태 최고위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태 최고위원은 이날 ‘대통령실에 누를 끼쳤다’며 대통령실에는 거듭 고개를 숙였지만, ‘4·3 김일성 지시설’ ‘김구 선생 폄하’ 등 또다른 망언에 대한 대국민 사과는 전혀 없었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의 선거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금지하고, 이런 행위가 있다고 인정될 때는 검찰 또는 경찰의 수사 착수를 규정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천 개입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번 사안은 구체적 정황과 내용이 담긴 육성 녹음 파일, 게다가 이후 태 최고위원의 행동 등 물적 증거와 근거, 정황이 너무 뚜렷하다. 그래도 당사자들이 부인하니, 수사 단서가 없다 할 것이다. 이는 손바닥으로 온 국민의 눈을 가리려는 격이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이번 ‘꼬리 자르기’는 끝이 아니라, 더 큰 역풍을 부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