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육장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노동시간 개악안 폐기투쟁 발표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여는 말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주당 최대 69시간 일할 수 있도록 한 개편안은 지난 6일 정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노동계 비판에 직면했다. 사흘 뒤인 9일, 엠제트(MZ)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도 반대 입장에 가세했다. ‘2030 청년층을 위해서’라던 정부 주장에 힘이 빠지면서, 정부도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겸허한 자세로 개편안의 문제를 살피는 대신,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혼선만 가중시켜 왔다. 지난 15일 국민의힘이 ‘주 64시간 상한’을 검토하다, 하루 만에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안상훈 사회수석)라는 대통령 메시지로 바뀌었다. 20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주 60시간보다 더 연장하는 방안’을 언급해 다시 기류가 바뀌는가 싶더니, 21일 윤석열 대통령 국무회의 머리발언으로 또다시 정정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이런 정책 난맥상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시간은 임금체계와 함께 노동조건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이 때문에 정부 개편안대로 연장노동시간 한도의 관리 단위를 바꾸려고 해도, 노동자 개인 동의는 물론이고 노동조합 대표자 등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해 당사자인 노사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키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앞서 개편안 설계도 학계 위주로만 꾸려진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손을 거쳤다. 종전보다 노동조건이 후퇴할 수 있는 중요 정책 논의에서 노동계가 철저히 외면당한 셈이다.
민주노총은 25일 투쟁 선포대회를 시작으로 대정부 투쟁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한국노총도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렇듯 노정 갈등이 격화할 조짐이지만, 정부·여당은 노동계와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을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오로지 ‘엠제트’만 붙잡으려 한다. 의견 수렴에 나서겠다는 여당은 엠제트 노조와의 ‘치맥 회동’만 준비한다고 한다. 주무부처 수장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20일 직원의 90% 이상이 엠제트 세대이고 연차휴가 소진율이 100%인 기업을 현장 방문해, 아전인수식 정책 홍보만 벌였다. 정부는 ‘갈라치기’를 그만두고, 이미 국민 신뢰를 잃은 개편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면서, 노사정이 참여하는 공론장부터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