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초청 오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과 관련해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내놓은 짧은 서면 브리핑 자료만 봐서는 무엇을 어떻게 재검토하라는 건지 알기 어렵다. 분명히 명토 박아 둘 것은, 직접 이해당사자인 노동계 의견 수렴도 없이 상륙작전하듯 제도 개편을 밀어붙여온 그 기조부터 바꾸지 않으면 결코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엠제트(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것을 지시했다. 노동시간 제도 개편은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발언으로 시작해 직접 진두지휘해온 ‘노동 공약 1호’ 정책이다. 지금까진 뭣 하다가 마치 남 얘기하듯 재검토를 지시한 모양새부터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가 보인다.
윤 대통령 지시에서 도드라지는 건 엠제트 세대를 콕 집은 대목이다. ‘엠제트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가 지난 9일 “평균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이 연장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조건을 개선해왔던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 이번 지시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오는 22일 부랴부랴 엠제트 노조 쪽과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거세게 몰아붙이면서도, 엠제트 노조에는 허둥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엠제트 노조는 국민의힘 지지층이라 생각하는 건가. 또 그동안 청년들이 원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개혁’을 추진한다고 주장해놓고 이제야 청년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의견을 듣겠다니 앞뒤가 안 맞는다.
정부는 주 52시간을 69시간(주 6일 근무 기준)까지 늘릴 수 있는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내놓으면서 ‘선택권·건강권·휴식권의 보편적 보장’, ‘시간 주권을 돌려주는 역사적 진일보’라 했고,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통해 ‘제주 한달 살기’도 가능해진다”고 했다. 여론의 싸늘한 반응에는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잘못된 오해가 있다”고 했다. 있는 연차휴가도 못 가는 판에 ‘제주 한달 살기’는 뭔가. 지금 누가 현실을 오해하고 있나. 정부가 ‘세대 갈라치기’에 기대 여론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엠제트 노조 앞으로 달려가기 전에 세계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해온 역사와 최근 흐름부터 살펴보며,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철회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