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출신인 정순신 변호사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하루 만에 낙마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학교폭력 가해자에 대한 합당한 조처가 힘 있는 부모에 의해 철저히 교란되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른바 ‘부모 찬스’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 경우는 공정성 훼손을 넘어 피해 학생에 대한 가혹한 2차 가해에 해당하기에 더욱 참담하다. 특히, 법제도의 허점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보완 대책이 시급하다.
법원 판결문을 보면, 사회적 공분을 살 수밖에 없는 정 변호사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17년 5월부터 동급생 2명에게 욕설을 비롯한 언어폭력을 지속해서 행사했다. 피해 학생 가운데 1명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두차례 입원 치료를 받았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학교 쪽은 신고된 사실을 확인해 정 변호사의 아들에게 전학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현직 검사였던 정 변호사는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행정소송과 전학 처분 등에 대한 집행정지까지 냈다. 학교에 제출했던 2차 진술서는 자신이 직접 ‘코치’를 해주기도 했다.
정 변호사는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서 최종 패소했지만, ‘시간 끌기’라는 목적은 달성됐다고 봐야 한다. 그의 아들은 대법원에서 패소한 뒤인 2019년 2월에야 전학 조처됐으며, 이듬해 정시에서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현직 검사가 법지식을 동원해 장기 소송전을 벌이는 동안, 피해 학생은 가해자의 1차 전학 처분이 취소된 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등 고통의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다고 한다.
가해 학생 부모가 소송전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학교폭력 관련 법률 시장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고 <한겨레>가 보도했다. 소송의 목적은 자식의 입시에 있다고 한다. 시간을 끌어 입시 전에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실이 기록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능력 있는 일부 부모에게만 해당할 테지만, 피해 학생의 끔찍한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빗나간 자식 사랑이 법률 시장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니 개탄스럽기만 하다.
최근에도 유명인의 학교폭력에 대한 뒤늦은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시간이 가도 피해자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야 한다. 3학년 2학기에 최종심 판결이 나더라도 이를 대학 쪽에 고지하는 방안을 비롯해 제도적 보완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