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민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 화면을 켠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장대비가 내린 이날 집회에서는 촛불 대신 휴대전화 촛불이나 엘이디(LED) 초를 들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이 또다시 공분을 사고 있다. 이번에는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느냐”고 했다. 어떤 맥락에서 나왔건, 생때같은 157명의 희생에 대한 책임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떠올리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 같은 발언들과 마찬가지로, 국가 재난관리 총책임자다운 태도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경질의 당위성만 스스로 다시 부각시켰을 뿐이다.
이 장관의 이번 발언은 <중앙일보>의 12일 보도로 알려졌다. 이 장관과 문자메시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신문은 밝혔다. 표현을 정제할 겨를 없이 부지불식간에 나온 실언이라 해도 심각한 문제인데, 그조차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장관은 문제의 발언 뒤 “하지만 그건 국민에 대한 도리도, 고위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폼 나게 사퇴’ 표현의 무책임하고 모욕적인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동안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일련의 발언과 여전히 변함없는 인식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참사 뒤 “사고 원인 발표 전까지 선동적인 정치적 주장을 해선 안 된다”고 엄포를 놨다. ‘참사 희생자’를 ‘사고 사망자’로 표현하도록 한 것과 관련한 국회 질의에는 “거의 참사 수준의 사고였다”며 언어유희에 가까운 답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참사에 대한 자신의 지휘 책임은 한번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참사 현장에서 사력을 다하고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책임질 각오가 돼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 아쉬움에 통탄하고 있다”고 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이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게는 70% 가까이 나오고 있다. 국민들은 그가 사고 수습과 진상 규명의 적임자이기는커녕 걸림돌이라고 이미 판단을 내린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13일 ‘범정부 재난안전관리체계 개편 티에프(TF)’의 단장을 이 장관에게 맡기기로 했다.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친 12일 저녁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집회’에 5만명 넘는 시민들이 모여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휴대전화에 촛불영상을 띄웠다. 사표를 ‘폼’으로 던지는 것쯤으로 여기는 이 장관과 정부 지휘부 눈에는 5만개의 촛불이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