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명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대 들어 지역 축제 등에서 안전사고가 빈발하자 정부는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매뉴얼과 재난안전법은 ‘이태원 참사’에선 무용지물이었다.
30일 <한겨레>가 확보한 행정안전부의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이하 매뉴얼)에는 축제 기획부터 단계별(시작 전, 진행 중, 사고 발생 시)로 개최자, 지방자치단체, 경찰, 소방 등의 역할이 담겨 있다. 개최자는 기획 단계부터 지자체, 소방서, 경찰서 등 유관기관 의견을 받아 안전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축제 진행 중에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순찰 활동을 벌이고 안내요원을 배치해야 한다. 비상 차량 동선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자체도 민관협력위원회를 꾸려 행사장에 대한 합동 지도·점검 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사고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담당 부서, 개최자 등과 지도·점검에 나서고, 축제 진행 중에는 안전관리 계획 이행 여부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이 매뉴얼은 2005년 경북 상주 콘서트장 압사 사고와 2006년 롯데월드 깔림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당시 정부는 안전관리 부처와 민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일본·영국의 매뉴얼을 연구했다. 2013년엔 재난안전법 개정으로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재난안전법엔 적용 대상, 지자체장 등 안전관리 책임자의 역할, 관련 조직에 대한 구체 사항 등이 담겼다.
하지만 매뉴얼과 재난안전법은 이태원 참사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적용을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모호한 조항들 때문이다. 매뉴얼과 재난안전법은 적용 대상을 △순간 최대 관람객이 10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지역 축제 △산 또는 수면에서 개최하는 지역 축제 △불·석유류 또는 폭발성 물질을 사용하는 지역 축제로 규정했지만, 정작 중요한 ‘지역 축제’의 정의는 담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인파가 몰리고 안전 우려가 있어도 지자체장이나 행안부가 지역 축제로 판단하지 않으면 그만인 셈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용산구가) 주최자 없이 업소들끼리 모여 하는 행사로 판단해 우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이번 행사는 지역 축제가 아니라 그냥 행사”라고 주장했다.
허억 가천대 국가안전관리대학원 교수는 “매뉴얼에 축제 개최자가 명확하지 않으면 안전 책임을 묻기 어렵다. 지자체가 안전을 책임지도록 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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