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0일 경기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설명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가석방 결정으로 이들 경제인이 이미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총리가 나서 사면까지 요청하겠다는 건 몹시 부적절하다.
한 총리는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등 경제인의 사면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 있나'라는 박성중 의원(국민의힘)의 질문에 “건의하겠다”고 답변했다. 한 총리의 이런 태도는 우선 8·15 광복절을 앞두고 집요할 정도로 계속되고 있는 경제단체들의 사면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질의와 답변이 ‘이심전심’이었는지, 미리 정해졌던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그동안 경제정책방향 발표 등을 통해 재벌 총수들의 각종 처벌 완화를 꾸준히 밝혀왔던 새 정부 기조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경제단체들은 이들 사면의 근거로 기업활동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는데, 사면까지 해줘야 할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가석방 신분자의 경우 해외 출입국 때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건건이 승인을 받아야 하고 외국 정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지난달 네덜란드에 11일간, 신동빈 회장은 지난달 3주간 유럽·일본 출장을 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기 힘들다. 또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억원 이상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법무부 장관의 승인 없이는 해당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업에 취업할 수 없게 돼 있음에도, 이 부회장은 법무부의 묵인으로 경영활동을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86억여원의 뇌물공여·횡령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확정받았고, 지난해 8월 가석방됐다.
반면 경제인 사면이 초래할 부정적인 효과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재벌 총수들의 명백한 범죄행위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사법 정의를 해쳐 국민 통합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법치주의를 흔들어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를 갉아먹는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회계조작 논란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농단 사건과도 연관이 돼 있는 사안인 만큼 사면이 재판에 영향을 줄 우려도 있다. 불법을 저지른 사회 특권계급에 대한 무분별한 사면은 법치주의와 ‘법 앞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무너뜨린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