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 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남쪽을 향해 대화 신호를 보냈다. 김 위원장은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10월 초 남북 통신연락선을 복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북 관계 악화로 413일간 단절됐던 남북 직통연락선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친서 교환을 거쳐 정전협정 기념일인 7월27일 복원되었다가, 북한이 8월10일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단절한 바 있다. 몇차례의 ‘김여정 담화’에 이어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직접 공개적으로 연락선 복원의 뜻을 밝힌 것은 남북 소통의 창구를 열겠다는 분명한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통신선 복원을 넘어서는 남북 관계 진전은 아직은 불투명해 보인다. 김 위원장은 “북남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나가는가, 악화 상태가 지속되는가는 남조선 당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남쪽에 공을 넘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중적 태도, 적대시 관점·정책의 철회”를 선결 과제로 요구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제안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은 “적대행위를 가리기 위한 허울” “적대시 정책의 연장”이라고 강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도적 지원’만을 얘기할 뿐,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에 구체적 응답을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김 위원장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남북 먼저, 북-미 나중’의 기조로, 우선 남북 관계를 개선해 미국으로부터 우호적 대북 조처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중 갈등으로 국제 정세의 긴장이 높아지고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도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소통의 물꼬를 트는 신호가 나온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대화 재개로 이어가며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려면, 남·북·미·중을 비롯한 관련국들의 외교적 노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7개월여 남고 대선이 다가온 상황에서, 종전선언 추진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이 여론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려면 남북 관계의 실질적 개선이 비핵화 협상의 진전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한·미 양국이 긴밀한 외교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들을 마련하는 게 중요해졌다.
북한은 통신선 복원을 넘어 남북 대화와 협력에 진지하게 나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