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왼쪽)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새벽 서울 영등포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노정 실무교섭이 타결된 뒤 서명한 합의문을 교환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과 정부가 총파업을 5시간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를 이뤄냈다. 무엇보다 우려했던 코로나19 의료 대응 공백 사태를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합의는 여러모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양쪽이 3개월 동안 13차례에 걸쳐 인내심을 갖고 협상을 한 끝에 일궈낸 소중한 성과다. 합의문에 담긴 내용들은 하나같이 의료의 공공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성실한 이행으로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와 정부가 합의한 내용은 크게 두 갈래다. 공공의료 강화(감염병 대응 체계 구축)와 보건의료인력 확충 및 처우 개선이 그것이다. 공공의료 관련 합의안에는 감염병 전문병원의 조속한 설립, 코로나 전담병원 중증도별 인력 기준 마련,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1곳 이상 책임의료기관 지정, 공공병원 추가 설립 등이 담겼다. 노조가 요구한 내용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우리나라 공공의료 인프라의 취약성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점에서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공공병상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코로나 환자의 80% 이상을 공공병원이 담당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공공병상 비중은 70%가 넘는다.
보건의료인력 확충과 관련해서는, 직종별 적정인력 기준 마련, 간호사 1명당 환자 수 제도화, 야간 간호료 확대 적용 등이 합의문에 담겼다. 그동안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돼온 것들이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케이(K) 방역’은 수많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기존 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번아웃’(탈진)을 호소하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직·휴직을 하는 간호사들이 속출하고 있는 걸 계속 지켜만 보는 건 도리가 아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이번 파업을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투쟁”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공공의료 강화와 보건의료인력 확충은 ‘위드 코로나’(코로나와의 공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합의 이행 과정에서 예산 확보 등 난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렵사리 뗀 첫걸음이 현실의 벽에 막히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