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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차별이 지겹습니다만

등록 2021-06-10 15:28수정 2021-06-11 02:36

[비온 뒤 무지개] 한채윤ㅣ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차별을 하려니 지겨워 죽겠네.” 아직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아무도 지겨우리만큼 차별을 실컷 해본 적이 없어서는 아니다. 차별이 너무 재미있어서 지겨울 틈이 없어서도 아니다. 차별을 하는 쪽이 자신의 행동을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차별을 하는 쪽엔 항상 자기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 그것도 국가의 안위나 민족의 번영, 이웃의 안전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등 거창하다. 이에 비해 차별받는 쪽의 사연은 소소해 보인다. 가려고 한 곳에 가지 못했고,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는 정도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이런 말은 들어본 적 있다. “거참, 차별받았다고 떠드는 거 지겨워 죽겠네.”

그렇다. 나도 지겹다. 차별을 받는 일도, 받은 차별을 고발하는 글을 쓰는 것도 지겹다. 너무 지겹다 보니 이젠 차별을 하는 사람들도 좀 지겨움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면 편견과 혐오가 있으면서 없는 척하는 일,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내세워 차별을 정당화하는 일을 안 할 텐데. 헌법 제21조엔 모든 국민에겐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성소수자도 국민이고, 인권 활동은 공익에 부합하므로 성소수자 인권단체의 설립 자체를 불허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어려운 차별을 기어이 저지르고야 마는 공무원들도 있어 하는 말이다.

2014년에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이 발족했을 때의 일이다. 사단법인이 되기 위해 법무부에 신청 서류를 냈다.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법무부는 설립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이유를 물었지만 몇달이 지나도록 아무 답도 주지 않았다. 이유를 알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가 행정심판 절차를 밟아야 했다. 어렵게 받아낸 공문의 내용은 놀라웠다. 법무부는 종합적인 인권을 ‘옹호’하는 단체를 담당하므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증진’ 활동을 하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자신들의 소관 업무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그야말로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라는 표현이 딱 적합한 이야기인데도 법무부는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옹호와 증진은 다르다는 건 말장난일 뿐인데도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재단은 2015년에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꼬박 3년간 싸운 끝에 2018년에야 겨우 사단법인 설립허가증을 받았다.

이런 어이없는 차별은 한번으로 족할진대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20년간 시민참여형 축제를 개최해온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서울시에 사단법인 설립 허가 신청을 했다. 2019년의 일이었다. 서울시는 처음엔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담당할 주무부서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문화예술과가 있지 않냐고 하니 축제조직위원회의 정관에 ‘성소수자’와 ‘평등’이란 단어가 있어서 문화단체로 볼 수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1년 동안 논쟁을 해서 결국 주무부서로 문화예술과가 정해졌지만, 역시 서류상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몇가지 더 법리적으로 검토할 것이 있다며 시간을 끌었다. 어떤 검토가 필요한 것이냐 물으면 알려줄 수 없다며 그저 기다리라고만 답한다. 어느새 3년째다. 이러니 차별이 지겹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차별이 지겹긴 하지만, 그렇다고 차별에 길들여질 수는 없다. 삶이 좀 서러워도 삶을 향유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올해로 22회를 맞이하는 서울퀴어문화축제는 6월26일부터 7월18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방역수칙을 따르며 안전하게 열릴 예정이다. 영화제, 북토크, 드래그와 보깅 배우기, 퍼레이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그리고 마침 6월은, 성소수자 인권을 향상시키자는 의미에서 전세계적으로 다 같이 기념하는 ‘자긍심의 달’(Pride Month)이다. 서울시는 깨닫기 바란다. 지금이 차별을 멈추기에 딱 좋은 때다. 지금 당장 사단법인 설립을 허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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