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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산바람 강바람

등록 2021-06-06 13:48수정 2021-06-07 02:06

손석우 ㅣ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언제 배웠는지 그리고 누가 가르쳐줬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1절을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동요가 있다. 케이팝(K-POP)이란 단어조차 없던 유년 시절, 수많은 동요를 듣고 불렀지만 1절을 온전히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산바람 강바람’이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 2절은 도통 기억나지 않아 인터넷에서 가사를 찾았다.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 간대요.” 시인 윤석중 작사, 첼리스트 박태현 작곡으로 무려 85년 전인 1936년에 발표된 곡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원곡의 “서늘한 바람”이 “시원한 바람”으로 일부 개사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정감이 넘치는 노래다.

산바람? 강바람? 노래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본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이유는 분명치 않다. 정치-경제면의 ‘구조조정 칼바람’, ‘정리해고 피바람’ 등 섬뜩한 ‘바람’들을 보다 우연찮게 노래 가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은 산 아래 바람보다 강하다. 바람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강해지기 때문이다. 높은 하늘로 올라갈수록 바람은 더욱 강해져서 고도 10㎞ 전후에서 최대치에 이른다. 물론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여름철에 국한한다면 고도 10㎞ 전후에 나타나는 강풍대는 북반구뿐만 아니라 남반구에서도 뚜렷하다. 이를 제트류라 부른다. 물론 시인이 바람의 분포를 염두에 두고 가사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산에 부는 잔잔한 바람을 느껴본 적 있는가? 산에서 부는 바람은 등선보다 계곡에서 뚜렷하다. 보통 낮 시간에는 산 아래에서 산 정상으로 바람이 분다. 산 중턱 혹은 정상의 공기가 주변보다 더 빨리 데워지기 때문이다. 반면 밤 시간에는 산 정상에서 산 아래로 바람이 분다. 여기서 밤 시간 부는 바람을 산풍 혹은 산바람이라고 부른다.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퇴근하는 길, 이따금 산바람을 체감할 기회가 있다. 밤늦은 퇴근길에 만나는 산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종종 서늘하다.

그러니까 산바람은 밤에 부는 바람이다.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낮 시간이 아니라. 이 점에서 동요 제목 ‘산바람’은 과학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동심을 파괴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아마도 시인은 그저 산에서 부는 바람을 산바람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굳이 과학적으로 제목을 수정한다면 ‘산바람’ 대신 ‘골바람’이 적절하다. 골바람은 낮 시간 산 아래에서 산 정상으로 부는 바람이다. 산바람보다 다소 약하지만 땀을 식히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강바람’은 가사가 전해주는 그대로 “강가에서 부는 바람”이다. 특정한 과학적인 원리보다는 주변 지형에 의해 결정된다. 대도시에서도 강바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강 변 혹은 낙동강 변 바람. 도심은 불규칙적인 건물들이 흩어져 있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바람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위 장애물이 없는 강변에서야 바람을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산바람은 구름이 없는 맑은 날에 두드러진다. 구름이 잔뜩 끼어서 햇볕이 충분하지 않거나, 혹은 비가 오는 날이면 자취를 감춘다. 이 점에서 장마철에는 찾기 힘든 현상이다.

장마철 산바람과 강바람이 사라진 자리는 종종 비바람으로 채워진다. 지난해 장마를 기억하는가? 끊임없이 비바람이 몰아쳤다. 우산만으로는 세찬 빗방울을 막아내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저기압이 접근하면서 혹은 장마전선이 발달하면서 바람이 급격히 변하고 비와 돌풍이 함께 발생했기 때문이다.

올여름은 세찬 비바람이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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