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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도토리 키재기

등록 2023-06-18 18:19수정 2023-06-19 02:36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화창하다 못해 따가운 낮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밤에는 긴 소매 옷이 필요할 만큼 서늘하다. 한여름이 시작되기 전 전형적인 초여름 날씨다. 올해는 평소와 달리 북태평양 고기압이 느리게 확장하고 있다. 이 고기압이 한반도로 확장하는 순간, 남쪽으로부터 습한 공기가 한꺼번에 몰려올 것이다. 그렇게 후덥지근한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지난 주말 더위를 피해 산에 올랐다. 전철역과 등산로가 연결돼, 주말이면 종종 찾는 산이다. 이른 아침부터 등산로는 사람들로 붐볐다.

물소리도 좋지만 등산로 주변 나무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라고 한다. 바늘을 닮은 나뭇잎을 가진 소나무. 소나무는 왜 그렇게 뾰족한 나뭇잎을 가졌을까? 한 가지 이유는 햇볕을 나누기 위해서다. 나뭇잎이 넓다면 대부분의 햇볕은 높은 곳에 자리한 나뭇잎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 아래 나뭇잎들은 그늘에 가려 충분한 햇볕을 받지 못하게 된다. 빈틈이 많은 뾰족한 나뭇잎은 이런 햇볕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활엽수가 불평등한 나무라는 것은 아니라. 활엽수도 햇볕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높은 곳의 나뭇잎은 잎을 활짝 펴지 않는다. 필요한 양 만큼만 햇볕을 흡수하고 나머지는 아래 나뭇잎들에 양보한다. 그 덕에 낮은 곳의 나뭇잎들은 잎을 활짝 펴 햇볕을 모을 수 있다. 물론 모든 나무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햇볕의 격차를 줄이면서 나무가 진화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빈부의 격차로 신음하는 인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참나무다. 등산로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나무다. 참나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방학 숙제 때문이었다. 참나무는 다양한 곤충들에게 잠자리와 먹거리를 제공한다. 그중 하나가 사슴벌레다. 방학 숙제로 사슴벌레를 채집해 가면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큰 관심을 받았다. 그 욕심에 여름 방학이면 참나무 숲을 뒤졌다.

참나무의 ‘참'은 진짜 혹은 으뜸을 뜻한다. 일상 생활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목재로도 쓰이지만 숯으로 만들었을 때 탁월하다. 고급 숯불구이 식당에서는 참나무를 숯으로 쓴다. 으뜸인 또 다른 이유는 열매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참나무 열매가 바로 도토리다.

우리나라에는 여섯 종의 참나무가 있다.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그리고 신갈나무. 이름에 ‘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참나무의 다른 이름이 갈나무이기 때문이다. 넓고 푸른 잎이 가을에는 갈색으로 변한다고 해서 갈나무로 불렸다. 각각의 열매는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뚱뚱한 도토리, 길쭉한 도토리, 동그란 도토리. 맛도 다르다. 그중 가장 맛있는 것은 상수리 도토리란다. 상수리 도토리묵은 맛이 좋아 임금의 수라상에도 올랐다고 한다. 상수라가 상수리로 변해 상수리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물론 다른 참나무 도토리가 더 맛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도토리 키재기.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도토리 키가 비슷한 것에 빗대어 만들어진 속담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초등학교 때 도토리 키를 재본 적이 있다. 비록 모두 작았지만 각각은 키가 달랐다.

참나무를 좋아하는 과학적 이유도 있다. 참나무는 탄소중립을 위해 중요한 나무다. 보통 활엽수들은 침엽수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등산길에 흔히 보는 참나무. 그저 등산로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에 작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등산을 마치고 도토리묵을 먹었다. 그런데 무슨 도토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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