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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영전 칼럼] 교문이 사라졌다

등록 2021-06-01 14:50수정 2021-06-02 11:49

서울대학교 정문.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대학교 정문. <한겨레> 자료사진

신영전 ㅣ 한양대 의대 교수

의대생과 조교 시절, 의대 도서실과 연구실의 지정학적 위치는 내게 특별한 80~90년대를 선물했다. 특히 내가 근무하던 연구실은 교문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건물 5층에 있었다. 덕분에 나는 교문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학생들과 전경들 간의 싸움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그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연구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장면의 일단은 이랬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학교 경계 벽을 부숴 돌조각을 만들면 다른 무리의 학생들은 그 부서진 붉은 벽돌을 양손에 쥐고 함성을 지르며 교문 쪽으로 달려나가 던졌다. 이에 질세라 교문 밖 건너편에 있던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아댔다. 그 와중에도 학생들은 집요하게 닫혀 있는 교문을 열려고 시도했고, 몇시간의 공방전 끝에 겨우 열어젖힌 교문을 전경들은 달려들어 다시 닫기를 반복했다. 정치 상황이 역전되자 학생들은 마침내 전경의 저지 없이 교문을 ‘당당히’ 통과하여 교문 앞 차도까지 진출해 행진했다. 교문은 단지 물리적 경계가 아니라 80~90년대 한국 정치 전선의 상징이었다.

얼마 전 교육부는 회생이 어려운 대학은 퇴출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발표문 어디에도 무너진 대학의 공공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쯤 대학본부들은 장학금, 기숙사 제공 등 각양각색의 학생 유치전과 기부입학, 벤처 유치 등 돈벌이 방안들을 만드느라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강의실 뒤편은 한국말도 모르면서 멀뚱하니 앉아 있어야 하는 외국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던 교문이 갑자기 사라졌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위가 사라지자 대학들은 앞다투어 캠퍼스를 시민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문도 철거됐다. 캠퍼스의 개방은 시민들이 민주화운동을 통해 얻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다.

그로부터 30년, 다시 쌓은 벽돌 벽은 무성하게 자란 개나리 수풀에 덮여 잘 보이지 않는다. 전경이 막고 있는 교문을 뚫고 아크로폴리스로 남대협 깃발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입성하던 남도 학생들과 이를 맞이하던 전국 대학생들의 환호도 이제 들리지 않는다. 새 학기 신입생 대상 동아리 모집 행사로 부산했던 학생회관 앞 공터의 발랄함도 시들해졌다. 기성세대의 고지식한 관성에서 일탈하여 학교 강의가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이었던 동아리의 회원 모집 천막마다엔 “스펙-업 해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휘날린다. “죽어도 팔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려던 학교 앞 서점 주인도 오랜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얼마 전 서점을 팔고 떠났다.

2005년 “대학설립운영규정”을 개정하여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학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대운동장 자리에는 기업이 돈을 내 세운 ‘산학협력센터’가 들어섰다. 대학이 만들어낸 연구 성과물을 신속하게 가져가기 위해 기업이 학교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밤을 지새우는 연구실은 정부와 기업의 하청 공장이 되어버렸고 교내 학술모임도 비싼 공간사용료를 받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돌파했던 교문의 안쪽은 영리기업의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마트들이 밀고 들어와 다시 점령해버렸다. 돈 안 되는 연구를 하는 것은 게으른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보직자들은 연구비를 받아와야 교수를 승진시켜주는 규정도 만들었다. 부끄러움과 성찰도 사라졌다. 얼마 전 한 대학교에서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전쟁무기 기술 개발을 자랑스레 홍보하다 외국 학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느라 빚을 안고 사회로 나가야 하는 나쁜 미국식 대학 모델이 이식되고 도서관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의 취업준비 장소가 되었다. 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학생들만 ‘명문대’에 입학하고, 다시 ‘그들’만이 대기업에 취직하는 ‘이너 서클’은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오늘 밤에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온 ‘명문대’ 밖의 학생들은 200번째 자소서를 쓰다 지쳐 잠이 든다.

이는 특정 대학만의 풍경이 아니다. 대학은 한때 지성의 마지막 보루였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대학은 조건 없이 존재해야 하며, 독단적이고 공정한 전유를 일삼는 모든 권력에 비판적으로 저항하는 최후의 장소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지혜를 기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공간을 대학 안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얼마 전 교육부는 회생이 어려운 대학은 퇴출시키겠다는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지원 전략’을 발표했다. 발표문 어디에도 무너진 대학의 공공성을 바로 세우겠다는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쯤 대학본부들은 장학금, 기숙사 제공 등 각양각색의 학생 유치전과 기부입학, 벤처 유치 등 돈벌이 방안들을 만드느라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강의실 뒤편은 한국말도 모르면서 멀뚱하니 앉아 있어야 하는 외국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다.

30년 전 그때 청년 학생들은 왜 그리도 간절히 교문을 돌파하려고 벽돌을 던졌을까? 우리는 대학의 영혼을 지키고 교문을 세우기 위해 다시 붉은 벽돌을 들 수 있을까? 6월이 돌아왔지만 이제 대학 교정은 안과 밖이 차이가 없다. 교문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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