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레스토랑: 함께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등록 2021-05-25 14:04수정 2021-05-26 02:36

[김용석의 언어탐방] 레스토랑과 작별했던 기간 동안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 그리웠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동안 풍부한 사회성이 발현될 수 있는 곳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레스토랑 야외 식탁에 혼자 앉아 있다. 하지만 ‘홀로 식사한다’는 느낌은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식사한다’고 느낀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 철학자

코로나19 방역 담당자가 브리핑을 마치며 말한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역 수칙을 지키며 생활하는 것입니다.” ‘좋다’라는 말을 세번이나 한다. 이렇게 그는 팬데믹 시대의 곤경을 어색한 언어로 위장하는 곤혹스러운 공무 또한 수행한다. 아침 차를 마시면서 듣고 있던 말이 찻잔을 타고 찐하게 공명한다. 동시에 18세기의 철학자 칸트의 말을 소환한다. 반복되는 ‘좋다’라는 형용사 때문이다. 칸트는 “인간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복된 삶이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식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기의 전염병은 지난 1년 반 동안 이 소박하지만 보편적인 행복의 조건을 매정하게 제한해왔다. 그 기간 동안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먹고 마시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장소에 가지 못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최근 유럽에서는 방역을 위한 봉쇄를 풀기 시작했다. 파리의 한 시민은 봉쇄 기간 동안 “식당과의 작별”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레스토랑(restaurant), 프랑스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해서 국제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이 말이 특별한 어원적 의미를 품고 있어서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서 “서양식 음식점”이라고 정의하는 이 말에는 음식, 식사, 식당 등과 달리 ‘먹다’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다. 레스토랑은 라틴어에서 유래한 프랑스어 동사 ‘되살리다’의 분사형이다. 처음에는 ‘원기를 회복해주는’ 음식이라는 뜻이었다. 주로 고기를 푹 고아서 우려낸 국물 요리를 가리켰다.

외식하는 공공장소로서 현대적 의미의 레스토랑은 대략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한 시기에 형성되어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은 1825년 출간된 <미식 예찬>(원제: 미각의 생리학)에서 이미 레스토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레스토랑 경영자란 대중에게 언제나 준비된 향연을 제공하는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그곳의 요리는 손님의 요구에 따라 1인분당 정해진 가격으로 팔린다. 이러한 가게를 레스토랑이라 부른다. 요리 이름과 가격이 적힌 목록을 차림표라 하며, 주문된 요리의 양과 가격이 적힌 쪽지를 계산서라고 부른다.” 이는 현재 우리에게도 친숙한 정의이다.

이어서 그는 “최초로 레스토랑을 세운 사람은 천재이자 심오한 통찰력의 소유자였음이 분명하다”며 레스토랑 예찬에 나선다. 잘 알려진 미식가인 그가 레스토랑을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찬양한 것은 우선 그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유일 뿐이다.

레스토랑은 인류 진화의 거울이다. 인간이 고도의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칸트도 19세기 진화론 등장 이후에 활동했다면 이에 동의했으리라. 레스토랑이 음식의 이름일 때와는 달리 사회적 모임의 장소가 될 때에는 복합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레스토랑의 원기 회복 기능은 음식의 작용만은 아니다. 레스토랑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제공되는 모든 것이 동반 상승 효과를 내며 원기를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는 오감이 모두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감각이 활성화된 조건에서 식탁에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성은 특별해진다. 그에 맞는 소통과 의례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은 평화롭게 공동 식사를 할 줄 아는 동물’이라고 정의한다. 자연에서 대부분의 동물은 함께 먹으면서 동시에 평화롭게 먹는 데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다. 잠깐, 비전문가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실증 자료도 없이 전문 분야로 월경해 오다니! 생물학자와 진화론자에게 이런 질타를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크게 저어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의 유의미한 전문 연구도 지금까지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 예로 저명한 진화인류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리처드 랭엄은 인류의 화식(火食) 탐구를 바탕으로 요리와 진화의 상관관계 및 뇌와 인지 기능의 발달에 관한 연구 성과를 내놓고 있다. 랭엄은 인간이 “불로 요리하는 동물”이며 불로 익힌 음식이 뇌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면서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브리야사바랭의 명언도 상기시킨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 이해의 통로를 요리와 음식에 한정하고 있다. 인류 진화에서 ‘공동 식사’의 사회·문화적 역할은 아직 미답의 영역으로 보인다.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지만, 이런 제한된 관심은 대중문화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요리와 음식에 관한 담론은 넘쳐나지만, 공동 식사의 의미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별로 없다. 인식의 관점을 바꾸면 반복되는 사회문제에 대한 논란도 훨씬 다르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은 밥 먹는 문제만이 아니다.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일상의 레스토랑’을 제공하는 문제이다. 그래야 교육적이다. 군대급식도 마찬가지다. 군인들에게 일상의 레스토랑을 제공하는 과제이다. 그래야 사기 회복의 효과를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다.

사람들은 오로지 잘 요리된 음식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지 않는다. 풍부한 사회성 때문에 간다. 제임스 브룩스 감독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레스토랑의 이런 차원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멜빈은 잘나가는 연애소설 작가다. 인간관계를 묘사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하지만 실제 인간관계는 꽝이다. 사람 혐오 증세가 있어서 이웃의 삶을 경멸하고 신랄한 독설로 그들을 비꼰다. 이에 더해 결벽증까지 있어 집 밖에서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접촉을 꺼리고, 길을 갈 때는 사람들과 닿지 않으려고 계속 뒤뚱뒤뚱 걷는다.

이 정도면 아예 외출하지 말고 집에서 식사해야 한다. 그래도 그는 점심때면 레스토랑에 간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느끼는 유일한 장소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결벽증 때문에 집에서 가져온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고 홀로 앉아 식사하지만, 그는 구석진 자리에 앉지 않는다. 그가 항상 사용하는 식탁은 레스토랑의 중앙 복도에 면한 자리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셈이다.

앞서 등장한 파리 시민은 레스토랑과 작별했던 기간 동안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 그리웠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동안 풍부한 사회성이 발현될 수 있는 곳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레스토랑 야외 식탁에 혼자 앉아 있다. 하지만 ‘홀로 식사한다’는 느낌은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식사한다’고 느낀다. 따스한 레스토랑 음식은 한때 원기 회복이었고 소생의 기적까지 일으켰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상의 부활을 위한 존재적 지표가 되고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나의 완벽한 상사 [세상읽기] 1.

나의 완벽한 상사 [세상읽기]

딥시크, ‘제번스의 역설’처럼 고성능 칩 수요 늘릴까 [유레카] 2.

딥시크, ‘제번스의 역설’처럼 고성능 칩 수요 늘릴까 [유레카]

최상목 ‘마은혁 임명’ 불복 땐 직무유기 [2월4일 뉴스뷰리핑] 3.

최상목 ‘마은혁 임명’ 불복 땐 직무유기 [2월4일 뉴스뷰리핑]

공교육에 부적합한 AI 교과서, 세금으로 무상보급 웬 말인가 [왜냐면] 4.

공교육에 부적합한 AI 교과서, 세금으로 무상보급 웬 말인가 [왜냐면]

‘사상 검증’, ‘연좌제’ 시대로 돌아갔는가? [권태호 칼럼] 5.

‘사상 검증’, ‘연좌제’ 시대로 돌아갔는가? [권태호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