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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흙비가 내린다

등록 2021-05-09 16:30수정 2021-05-10 02:37

[손석우의 바람]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하늘에서 흙먼지가 비처럼 내린다. 그래서 “흙비”라 부른다.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황사”의 순우리말이다. 종종 황사가 섞인 비를 일컫는 것으로 오해받지만 천년이 넘도록 사용된 우리말이다. 그 첫 기록은 <삼국사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174년, 한자로 ‘우토’(雨土)가 기록된 이래 수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를 넘어 조선시대에는 ‘토우’(土雨)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물론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땅에 있어야 할 흙먼지가 하늘에서 내리는 날, 왕은 자신의 부덕을 탓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흙비 내리는 날 왕은 풍악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이며,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고 술을 금했다고 한다. 흙비로 하늘이 뿌연 날이면 백성들도 두려움을 가졌다. 수증기로 뿌연 안개와 달리 흙비는 해가 떠도 사라지지 않는다. 심지어 태양을 가리기도 했으니 흙비가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황사가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다. 경성측후소에서 근무하던 일본인이 흙비를 황사라고 기록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중국에서 빌려온, 그래서 이 땅의 흙비와는 맞지 않는 표현이었지만, 100년이 지난 현재 표준어가 되었다. 황사는 말 그대로 노란 모래다. 혹시 황사가 심한 날 하늘에 날리는 모래 혹은 땅에 떨어진 모래를 본 적이 있는가? 사실 황사 발원지 주변을 제외하면 모래 폭풍을 관찰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이 모래가 한반도까지 날아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한반도로 날아오는 것들은 모래보다 훨씬 가벼운 흙먼지들이다. 그래서 황사는 미세먼지로 구분된다.

흙비가 내몽골 건조지역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봄철 이 지역은 매우 건조해 마른 모래와 흙으로 뒤덮인다. 여기에 저기압이 발달하면서 강한 바람이 불면 모래와 흙먼지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높은 하늘에서 더 강한 바람을 만나면 흙먼지는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한반도까지 날아온다. 그리고 한반도 주위 바람이 잠잠해질 때 천천히 땅으로 떨어진다. 이것이 흙비다. 물론 모든 흙먼지가 한반도 인근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강할 경우엔 태평양을 넘어 미국 본토까지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

흙비와 비슷한 현상은 세계 곳곳에 있다. 세계 최대의 사막인 사하라에도 매우 빈번하게 발생한다. 흥미롭게도 사하라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는 흙먼지는 대서양 해양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흙먼지에는 칼슘, 마그네슘, 철, 인 등 다량의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서양에 떨어진 흙먼지는 바다에 철을 공급함으로써 플랑크톤의 번식을 돕는다. 철은 식물성 플랑크톤의 번식에 필수적이다. 흙먼지가 남미의 열대우림까지 날아간다면 숲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흙먼지에 섞인 인산염이 일종의 비료가 돼 나무의 성장을 돕기 때문이다. 자연에서는 흙먼지조차도 나름의 쓸모가 있는 셈이다.

과거 농경사회 한반도에서도 흙비는 일부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흙을 산성과 알칼리성으로 나눈다면 이 땅의 흙은 산성에 가깝다. 누군가 일부러 산성화시킨 것은 아니다. 한반도는 태초부터 주로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 암석들이 풍화되면서 토양이 만들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암석들은 알칼리 성분이 부족해 산성의 토양이 된 것이다. 흙비에 들어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 등 알칼리 성분은 산성의 토양을 중화하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연근해 해양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더 이상 농경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최근 중국발 흙비에는 미네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량의 오염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주말 하늘은 뒤덮은 흙비, 반가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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