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을 의미하는 자정까지 이제 100초가 남았다. 또한 차기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9일이라고 하니 문재인 정부도 대략 1년이 남은 셈이다. 인류에게 남은 100초는 단지 24시간의 0.1%의 시간이 아니다. 거기에 인류와 지구의 생존이 달려 있고 문재인 정부 마지막 1년에 한반도의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이 달려 있다.
스테파노 조각상. 오른손은 집사를 의미하는 펜을, 왼손은 죽음을 의미하는 돌멩이를 들고 있다. 신영전 제공
신영전 ㅣ 한양대 의대 교수
2년 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스테파노 성당에 들렀다가 기념으로 5센티 남짓한 스테파노 조각상을 샀다. 그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전하지 못했다. 스테파노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는데, ‘집사’, 영어로 ‘스튜어드’의 역할이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의 역할과 같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스테파노 조각상은 한 손엔 집사를 의미하는 펜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돌멩이 몇 개를 들고 있다. 돌멩이는 그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는 옛것을 고집하는 유대인들의 거짓 송사로 돌에 맞아 죽었다. 문 대통령의 세례명인 티모테오의 마지막도 스테파노와 비슷했다. 이를 두고 어떤 우익인사는 문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를 예언하기도 했지만, 이는 실로 어리석은 해석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늘이 누구보다 사랑했고 땅의 사람들도 성인으로 기리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용비어천가를 부르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스테파노가 하늘과 땅이 모두 사랑하는 스튜어드가 될 수 있었을까이다. 이주민 출신 헬라파 유대인이 죽어서도 영원히 살게 된 이유는 돌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 그의 첫사랑을 지켰기 때문이다. 숨을 거두는 순간, 자기에게 돌을 던진 이들에게 죄를 돌리지 말아 달라 외치는 그의 마지막 목소리는 하늘과 땅을 감동시킬 만큼 아름다웠다.
마지막 순간은 중요하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이고,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도 있다. 묘지 앞에 서야 비로소 그의 생이 전부 보이는 법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도 죽기 한시간 전, 주인공은 가족에 대한 태도를 바꿈으로써 죽음의 고통을 넘어선다.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는 2011년 일본 도호쿠 지역 쓰나미로 약 2만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고, 사랑하는 아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아픔을 겪으며 쓴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책에서 인간의 인생은 최후의 최후까지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난 1월27일 미국 핵과학자회는 올해 운명의 날 시계를 23시58분20초로 맞췄다고 발표했다. 지구 종말을 의미하는 자정까지 이제 100초가 남았다. 또한 차기 대통령선거가 내년 3월9일이라고 하니 문재인 정부도 대략 1년이 남은 셈이다. 인류에게 남은 100초는 단지 24시간의 0.1%의 시간이 아니다. 거기에 인류와 지구의 생존이 달려 있고 문재인 정부 마지막 1년에 한반도의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이 달려 있다.
신학자 에라스뮈스는 격언집에서 ‘백조의 노래’란 희랍 격언을 소개한다. 백조가 죽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것에 빗대 인생 만년의 농익은 명작을 뜻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집권 1년 동안, 문재인 정부는 어떤 노래를 부를까? 지금 같아선 추운 광화문 거리를 뜨겁게 덥히던 노래와 함성이 만들어낸, “기회는 평등하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 “상생과 평화의 한반도 생명 안전공동체”,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공허한 정치적 수사나 이루지 못한 꿈으로만 남을 것 같다. 노력했으나 하지 못한 것은 이해해도 공공병원 설립 같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 등 해야 할 일을 시작도 안 한 것과 규제샌드박스와 영리 유전자검사 허용, 국민 건강정보를 영리기업에 넘겨주는 데이터3법 등과 같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은 용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난 4년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위에 군림한 검찰의 조폭질, 모피아와 선출되지 않은 관료권력의 음흉한 조아림, 재벌과 바이오벤처들의 달콤한 송사, “시원하시겠습니다!”라 외치는 주위의 아첨꾼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반면 바른 소리 하는 시민, 노동사회와는 연을 끊었다. 무엇보다 국민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 9회 말이 남아 있다. 그 마지막 1년의 시간에 문재인 대통령은 기득권 세력이 던지는 돌을 맞으면서도 첫사랑의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을까? 부동산 투기 청산하고,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전국민 고용보험과 탈탄소 경제사회로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열강에 맞서 전시작전권도 회수하고, 남북 간 평화와 번영의 길로 많은 이들이 오고 가게 할 수 있을까? 인류에게 남은 100초 동안 우리는 또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 돈이 된다면 불법 땅투기, 생태 파괴, 심지어 전쟁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 기성세대 권력에 맞서 이 세상 모든 약자들과 미래 세대들이 손잡고 우렁찬 ‘백조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그 노래가 중요한 것은, 한 시인의 노래처럼, 내일은 오늘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달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