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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구서 후퇴한 ‘민주주의’, 촛불과 미얀마가 지키다

등록 2021-03-22 16:59수정 2021-03-23 02:40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_19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중심가에서 15일(현지시각) 야간통행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며 군부 쿠데타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2016년 한국의 촛불 이후 홍콩·미얀마 등 아시아가 전세계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선봉 구실을 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중심가에서 15일(현지시각) 야간통행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며 군부 쿠데타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2016년 한국의 촛불 이후 홍콩·미얀마 등 아시아가 전세계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선봉 구실을 하고 있다. 양곤/AP 연합뉴스

한국의 촛불집회가 홍콩 민주화 시위를 거쳐 최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결연한 저항운동으로 이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민주주의 퇴행에 대응해, 아시아 국가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역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016년 촛불의 세계사적 의미다.

오랫동안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여겨졌다. 20세기 들어 폭력과 압제에 대항한 전세계의 진취적 운동엔 예외 없이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30~40년대 파시즘에 대항한 서구 민주주의 블록의 승리와 1970년대 초부터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제3의 민주화운동,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동유럽 민주화,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아랍의 봄’까지, 민주주의는 시대의 흐름이고 역사의 진보에 부합하는 움직일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전세계, 특히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유럽의 상황은 민주주의가 항상 앞으로 전진하고 밑으로 공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건 아니란 것을 드러냈다. 민주주의가 정말 지속가능한 제도인가, 위기의 신호는 두 방향에서 왔다. 하나는 민주주의가 극복했다고 생각한 권위주의의 복귀였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인이 국민 지지를 받아 권좌에 올라 민주주의 가치를 침식하는 사례가 늘었다. 민주주의 교본 같던 미국에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건 단적인 예다.

트럼프는 당시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공공연하게 폭력을 부추겼다. 또 힐러리 클린턴이 국민 총투표에선 300만표가량 이겼는데도 “수백만명의 불법투표를 빼면 (선거인단뿐 아니라 총투표에서도) 내가 이겼다”고 명백한 거짓말을 했다. 4년 뒤인 2020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뒤 그의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건물을 점거하는 초유의 폭력사태를 일으킨 건 민주주의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줬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가 지향했던 ‘소수와 약자 권리의 확대’ 대신에 ‘다수 이익의 옹호’에 복무하는 포퓰리즘의 확산이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에는 이슬람 난민을 받아들이라는 유럽연합 할당제에 대한 영국민들의 정서적 반발이 한 이유로 작용했다. 2019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교섭단체들이 약진한 건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이 선거에서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교섭단체 ‘자유와 직접민주주의의 유럽’(EFDD)은 41석에서 54석으로,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국가와 자유의 유럽’(ENF)은 37석에서 58석으로 의석을 크게 늘렸다.

프랑스에선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74석의 프랑스 몫 유럽의회 의석 중 22석을 차지해 제1당에 올랐고,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도 극우 성향 정당이 제1당에 올라 유럽연합 앞날을 어둡게 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이들 정당의 공통점은 이민자에게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시절 무슬림의 입국규제 정책을 추진하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운 것은 유럽의 반이민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한국도 민주주의 퇴행의 세계적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인종, 종교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한국에서 민주주의 후퇴는 권위주의 통치 복귀로 가시화했다. 지금 구속돼 있는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집권 기간이 그런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과 선거 개입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이런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과 기본권의 심각한 후퇴는 박근혜 정부에선 훨씬 심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흡사 아버지의 시대(1970년대 유신독재)로 되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이란 표현에서 드러나듯 아무런 공식 직책을 갖지 않은 민간인에 의해 정부 시스템이 무력화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비록 순탄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민주주의가 점차 확산되며 공고해지고 있다는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2016년 촛불은 민주주의 후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백만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권력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대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한국의 촛불집회가 이후 홍콩 민주화 시위를 거쳐 최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결연한 저항운동으로 이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민주주의 퇴행에 대응해, 아시아 국가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역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정치학회장인 김남국 고려대 교수는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세계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경제적 형편만 나아지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유보해도 좋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도 약해졌다. 그런데 한국의 촛불집회는 경제적 이해 또는 종교적·인종적 이해가 아니라 절차적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운동에서 시작해 ‘국민주권’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단계까지 나갔다. 민주주의 가치를 위해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평화적으로 집회시위에 참여한 건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었다. 이것이 2016년 촛불의 세계사적, 역사적 의미라고 본다”고 말했다.

보편적인 민주주의 가치와 국민주권 회복에 최우선을 두었기에 촛불은 세대를 뛰어넘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2016년 촛불을 비교하면, 2008년엔 20대와 30대, 40대의 참여율(20대 13.7%, 30대 14.8%, 40대 12.8%)이 엇비슷했지만 50대에선 6.5%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2016년엔 20대부터 50대까지 참여율의 큰 차이가 없었다.(20대 30.3%, 30대 29.3%, 40대 29.7%, 50대 23.4%) 60대의 참여율만 10.5%에 머물렀을 뿐이다.(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조사)

어느 시대 어느 나라나, 최근 홍콩과 미얀마 민주화운동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치적 항의시위 주축은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다. 이들이 사회 부조리와 불의에 가장 민감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이다. 촛불시위와 집회에서 20~30대 젊은층이 핵심이었던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2016년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1차 촛불이 켜지는 데엔 최순실씨 딸의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학점 특혜 의혹에 대한 젊은층의 분노가 결정적 구실을 했다. 그런데 그 시기 또 하나 분명하게 눈에 띄는 건, ‘50대의 귀환’이다. 2008년에 비해 네배 가까이 늘어난 50대의 참여 열기는 분명 놀라운 수준이다.

흔히 ‘86세대’라 불리는 50대는 30년 전인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취직하고 나이가 들면서 점차 정치에서 관심이 멀어졌다가, 박근혜 정부의 권위주의 회귀에 분노해서 다시 ‘민주화 시위’에 동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장인 이현우 교수는 “50대가 2016년 탄핵 촛불을 지탱한 핵심 집단이란 점은 흥미롭다. 50대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 집권의 견인차 역할을 한 세대인데, 이들이 4년 뒤 촛불집회에 동참한 건 의미가 있다. 특히 50대 전반 유권자층이 탄핵 국면에서 빠르게 (박근혜 정부에) 등을 돌린 기저엔 ‘세대 효과’가 작용했다고 본다. 청년 시절의 경험(1987년 6월항쟁)이 민주주의 위기에 분노하고 이걸 지켜야겠다는 움직임으로 표출됐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것을 50대의 재정치화라고 불렀다.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역행에 분노해 주말마다 광화문에 모여 동문회를 열었고, 단체 카톡방이나 동호회가 활성화되면서 86세대의 재결집과 정치적 관심을 다시 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코앞에 둔 2017년 2월27일치 <한겨레>엔 “국정농단 청산하고 촛불혁명 완수하자” “박근혜를 탄핵하라, 특검수사 연장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모금에 참여한 1만여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전면 광고가 게재됐다. 광고를 게재한 주체는 서울대 민주동문회였다. 민주동문회의 현무환(77학번)씨는 “헌재 탄핵심판을 앞두고 우리 의견을 표현하자는 뜻에서 카톡을 통해서 졸업생들에게 모금을 하자고 제안했다. 1인당 1만원씩 내자고 했는데, 불과 며칠 만에 1만2천여명이 동참했다. 평소 동문회 카톡에 참여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600여명 수준이었던 걸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촛불집회를 거치며 나이 든 졸업생들이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왔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운동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연대와 결합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엔 정권 교체나 제도 개혁을 위해 연대했다면, 이제는 국민주권의 확대와 공정한 절차·제도의 확장을 위해서 세대 연대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그 점에서 촛불이 남긴 ‘민주주의 과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다음 회는 <박찬수의 진보를 찾아서> 연재 마지막 회로, ‘촛불은 무엇을 남겼나’ 세번째 이야기가 실립니다.

박찬수 ㅣ 선임논설위원. <한겨레신문>에서 정치부와 사회부·국제부 기자로 일했다. 국회와 청와대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과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를 펴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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