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택ㅣ여론팀장
“한겨레 칼럼이나 그 모든 것이 너무너무 답답했다. (…) 칼럼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한국에서 진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충격을 주고 싶다….”
“칼럼 코너를 가장 즐겨 보았습니다. (…) 어떻게 해야 칼럼을 쓰는 자격을 갖추는지 잘 모르지만 많은 것을 갖추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자격의 벽을 허물고 언론사상 처음으로 칼럼을 공모하기(로) 문을 활짝 열어놓다니 (…) 한겨레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파격적인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 주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엄마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요….”
지난 1~2월 <한겨레> 칼럼니스트 공모에 지원해준 분들의 숱한 사연은 첨부해준 본보기 칼럼이나 기획안만큼이나 눈에 띄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접수 결과를 기사로 짧게 소개했듯, 그들 스스로 한겨레와의 거리를 붙잡는 희망, 실망, 관망의 다단한 신호들 같았다.
340편가량의 기획안과 개인·단체 합쳐 450명가량의 필자 후보가 규모상 큰지 작은지 가늠하진 못했다. 미디어가 일반인 대상으로 칼럼니스트를 공모한 전례가 없는 탓이다. “도대체 시를 누가 읽나 싶은데 시 공모만 하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놀란다”는 홍인혜 시인의 말처럼, 이미 완벽히 경력을 갖춘 분부터 포부로 꽉 찬 분까지 예상은 퍽 뛰어넘는 규모였다.
전례가 있단들 지원자 수로 규모가 평가되겠는가. “마감 1주일 전부터 속이 꽉 막힌다”는 전문가 칼럼(최한수 교수·경제학)의 사정도 무시하고 칼럼 한 꼭지 준비에 (마법처럼) 하루를 쳐도, 최소 2편에서 여러편을 보낸 이들을 따졌을 때, 물경 2년치의 시간이 이곳에 당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지원서류를 완독한 14일 새벽 ‘아놔 좀’ 늙은 느낌이었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과 달리, 나쁜 칼럼의 이유는 비슷하지만 좋은 칼럼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1차 심사결과, 세 기획안이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9편 정도에 이견이 적었다. 그리고 10편 이상이 경계에서 더 논의를 앞두고 있다. 관념적인 글은 ‘통찰’의 다른 말, (지나치게) 주관적인 글은 ‘감성’의, (지나치게) 개인적인 글은 ‘당사자성’의 다른 말일 수 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심사위원 서로 “눈알은 진짜 빠지는가” 물으며 여러 날 밤 글에 몰입했다. 와중에 샘플 칼럼을 생략한 분을 만나면 환호했고, 기획안만으로도 ‘한칼’의 기운을 풍긴 분들은 다음 지원자의 글을 읽게 하는 힘이 됐다.
미디어는 편집국 기자들의 콘텐츠만으로 완전체가 될 수 없다. 이슈는 더 복잡해지는데다 늘 급류 타듯 전개되고, 이해관계자가 많아지며 그들 사이 비밀과 작전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분량의 콘텐츠가 출입처 기반으로 ‘하루 1모작’하듯 만들어지는 기사 꼴이다. 미디어와 대중의 거리가 멀어지고 ‘기레기’로 전락하게 된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취재방향과 취재력도 중요하지만, 지상의 정보와 통찰을 기민하게 찾아 잇는 역량과 경계 없는 태도가 더없이 귀하다. 미디어의 위기를 외부와의 단절 내지 편의적 연결에서 찾고, ‘저널리즘’을 넘어 이르건대 ‘저널리음’(저널+이음)을 향할 시점인 것이다. 이미 제보나 피드백은 기자 콘텐츠의 한계를 보완하는 필수연료이고, 매체의 힘은 제보력과 인터뷰 섭외력으로 결정이 된다.
때마침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쓴 최근 칼럼이 ‘제보 저널리즘을 위하여’였다. ‘받아쓰기 언론’의 실태를 꼬집고, 좁은 엘리트 인맥 안에서의 정보가 뉴스가 되는 공정(‘울타리 저널리즘’이라 불러본다)을 타파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론이 있을 수 없는 결론이다. 강 교수가 서두에 먼저 던진 질문, “참여연대와 민변은 투기 의혹에 대한 제보를 받아 조사를 벌였다고 했는데, 왜 제보가 좀 더 일찍 언론으로 가지 않았을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일까?”는 그래서 ‘제보는 왜 국회로 가지 않았는가?’, ‘검찰 경찰로 가지 않았는가?’, ‘권익위나 감사원, 청와대로 가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왜 야권으로 가지 않았는가’ 따위의 질문으로 눙쳐질 까닭이 없다.
미디어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영향력을 형성하는 과정이야말로 “좀스럽”기 이를 데 없다. 발품 팔아 묻고 또 묻는 입 말고는 기자에게 수단이란 게 없다. 그 또한 허약하여 “왜 그런 걸 묻느냐”며 “너 맞는 수가 있다”고 짓눌리고, 때로 뺨을 맞기도 한다. 검찰·경찰은 하지 않을 등기부등본 열람을 밤새 죄다 떼서 한다. 결국 정보도, 사람도 좀스럽게 잇고 부단히 연결할 때 미디어는 조금이라도 더 온전해질 수 있다.
공모전이므로 대다수의 낙선이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실로 닿을 수 없는 여러 세계들이 2년여치 앞질러 와줬다. 당신과 당신, 당신과 한겨레를 더 이어갈 동력이 될 것이다. 감사 인사를 거듭 드린다. (※ 4월 선발자 개별통보, 추가공지 등을 할 예정입니다.)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