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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떳떳한 땅 투기의 뿌리

등록 2021-03-16 18:08수정 2021-03-17 02:39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을 처분해 민간에 불하하는 과정에 온갖 이권이 뒤따랐음은 자명한 일이었고,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해당 기업과 관계 있는 사람에게 우선 불하한다”는 원칙을 고수했으므로 일제의 마름이었던 친일파 관리들이 여전히 그 일을 담당하거나 재산을 불하받았다. 그 기관과 그 일을 담당했던 사람들의 후신이 바로 지금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그 직원들이다.

하종강 ㅣ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중간계층’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나라마다 크게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 한동안 인터넷 게시판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 직장인들은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월 급여 500만원 이상, 자동차 2000㏄급 이상 소유…” 등 재산 상태를 기준으로 삼은 반면, 영국에서는 “페어플레이를 할 것,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불의·불법에 대처할 것…” 등이 제시됐고, 프랑스에서는 “외국어를 하나 정도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즐기는 스포츠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고, ‘공분’에 참여할 것…” 등을 기준 삼았고, 흔히 “부자들의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도와야 하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을 것…” 등을 ‘중간계층’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 비교되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이유를 한국 사회의 ‘중산층’이라는 단어와 영어권의 ‘미들 클래스’, 불어권의 ‘프티부르주아지’라는 단어의 의미 차이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딱히 그렇게 볼 수만도 없다. 실제로 대학 수업 시간에 각각 다른 반 학생들에게 ‘중산층’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중간계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물었을 때 크게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다루는 수업 시간에 ‘성공’이라는 단어를 몇 차례 사용한다. 오랜 기간 초인적 노력을 통해 크게 성공한 장애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은 매우 특별한 사람이고 그렇게 되지 못한 장애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은 평범한 사람일 뿐임에도, 성공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을 ‘루저’(패배자)처럼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은 시각이라고 설명한다. 그 대목에서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높은 지위를 갖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학생이 몇년 동안 단 한명도 없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곧 ‘성공’을 뜻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나 성실한 직장인 중에도 개인적 ‘성공’ 외에 사회구조를 평등하고 정의롭게 변화시키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 사회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 열심히 노력해 취업에 유리한 ‘스펙’을 쌓은 결과로 안정적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해 높은 연봉을 받는 삶에 특별한 흠결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보다 낮은 연봉을 받으며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젊었을 때 노력하지 않은 형벌”을 받는 것처럼 당연시하는 생각은 어리석다. 그러한 젊은이들이야말로 일찍이 사르트르가 지적한 대로 철저히 지배계급에 의해 선발되고 교육돼 그들을 위해 복무하면서 자신의 잇속도 챙기는 한낱 ‘지식 전문가’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표적 예가 최근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땅 투기를 한 직장인들이다.

어릴 적 연립주택형 적산가옥에 살았다. 여동생을 등에 업은 어머니를 따라 자주 들렸던 사무실이 ‘주택영단’이었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재산을 처분해 민간에 불하하는 과정에 온갖 이권이 뒤따랐음은 자명한 일이었고,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해당 기업과 관계 있는 사람에게 우선 불하한다”는 원칙을 고수했으므로 일제의 마름이었던 친일파 관리들이 여전히 그 일을 담당하거나 재산을 불하받았다. 그 기관과 그 일을 담당했던 사람들의 후신이 바로 지금 한국토지주택공사와 그 직원들이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올린 “난 열심히 차명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편하게 다닐 것”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공부 못해서 못 와 놓고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조리돌림”이라는 생각의 뿌리는 그만큼 깊다.

일제강점기에 동족을 배신하고 자신의 잇속을 챙겼던 선배들도 전혀 처벌받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본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 관행을 따라 했다 한들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문재인 정부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잘못한 사람들에게 합당한 처벌을 하지 못한다면, 먼 미래의 후배들이 우리 세대를 본받으며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미래를 또 물려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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