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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돈키호테의 풍차

등록 2021-03-15 04:59수정 2021-03-15 06:32

독일 암룸섬의 해상 풍력 발전 단지. 암룸/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암룸섬의 해상 풍력 발전 단지. 암룸/로이터 연합뉴스

풍차가 유명한 건 어쩌면 돈키호테 때문인지 모른다. 이미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던 돈키호테는 기사 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결국 기사를 자처하게 된다. 그리고 산초 판사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적들과 싸운다. 그중 하나가 마법사가 보낸 거인, 곧 풍차였다. 소설 속 별스럽지 않은 이 결투는 <돈키호테> 1, 2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돈키호테>의 배경은 스페인의 16세기 말~17세기 초로 이미 유럽 전역에 풍차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어 있던 때다. 주로 곡물을 빻거나 물을 퍼 올리는 데 사용되었다. 페르시아인들이 만든 최초의 풍차는 수직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형태였다. 마치 여러 개의 돛을 단 회전목마 같다.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수평축 풍차는 유럽에서 풍차가 흔해질 무렵에야 등장했다. 특히 돈키호테가 싸웠던 풍차탑은 14세기 말 지중해를 따라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풍차탑은 보통 원통형 혹은 다각형 탑과 네 개의 커다란 날개로 구성된다. 날개는 나무 뼈대를 천으로 덮어서 만들었는데, 바람의 세기에 따라 천을 뼈대에 펼치거나 혹은 감아 놓았다. 흥미로운 점은 풍차 날개가 평평한 것이 아니라 약간 휘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앞쪽은 모서리를 따라 약간 볼록하게 만들고 날개 끝으로 갈수록 살짝 휘게 만들었다. 마치 돛배의 돛이 조금 기울어져 있는 것처럼. 이렇게 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네덜란드에는 지금도 천 개가 넘는 풍차가 남아 있다. 그러나 많은 풍차들이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고장 나거나 소음 때문에 멈춘 것이 아니다. 풍차 주변이 관광지로 변하면서 건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건물들은 풍차가 충분한 바람을 얻는 것을 방해한다.

1888년 풍차의 용도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긴다. 그 주인공은 미국의 발명가 찰스 브러시였다. 그는 자신의 집 뒤편에 6층짜리 풍차탑을 세우고, 탑 꼭대기에 140개의 날개를 가진 풍차를 설치한다. 삼나무로 만든 날개는 길이가 7m가 넘었다. 이 거대한 풍차의 용도는 옥수수를 갈거나, 나무를 자르거나, 혹은 물을 퍼내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풍차는 발전기에 연결되었고, 생산한 전기는 지하실 축전지에 저장되었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무려 20년 동안 350개의 전구와 두 대의 전동기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했다. 최초의 자동운전 풍력발전기였다.

돈키호테가 싸웠던 그리고 브러시가 개발했던 풍차는 최근 들어 다시금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저탄소 친환경 발전기로. 현대의 풍력발전기는 사실 풍차탑과 그 구조가 매우 비슷하다. 긴 기둥과 약간 휘어진 날개(블레이드)로 구성된다. 굳이 결정적인 차이를 찾자면 날개가 네 개가 아닌 세 개란 점. 블레이드는 클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최근에는 70m가 넘는(브러시의 풍차 날개보다 무려 10배가 넘는다) 블레이드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날개 수를 늘리면 무게가 크게 증가해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를 고려해 가장 효율적으로 선택된 것이 세 개의 블레이드다.

세계 각국은 앞다투어 풍력발전에 뛰어들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풍력발전 국가로 자리잡았다. 발전량 기준으로 미국보다 2배 이상 많다. 한국도 1990년대 말부터 꾸준히 풍력발전량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풍력발전량은 전력 총생산량의 1%가 채 되지 않는다. 획기적인 전환을 위해 최근 정부는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발전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만약 성공한다면 대한민국은 세계 5대 풍력발전 국가가 된다.

잠시 상상해보자. 바다 한가운데 세워진 수백대의 풍차. 기대되지 않는가?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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