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칼럼니스트 공모 결과
“양극성 장애와 경계성 인격장애를 진단받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 소수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정신질환자, 이혼가정, 성소수자 등입니다. … 어떤 사람이라고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 다른 환자들에게 섣불리 응원이나 위로를 말할 수는 없지만, (저와 같은 질환의 사람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한겨레 칼럼니스트’(한칼) 공모를 최근 마감한 결과, 모두 339개의 기획안이 접수된 것으로 1일 집계됐다. 개인 308건, 단체응모가 31건으로, 전체 430명 이상(필자 수를 밝히지 않은 단체의 경우 밝힌 단체들 평균치인 4명으로 잠정)이 필자로 자원한 셈이다.
맨 위 지원 사유는 20대 직장인 여성의 지원서에 담겼다. 특수한 조건의 필자 발굴이 목적은 아니나, 이 여건 또한 아주 예외적이진 않았다. 응모 내역을 분류해보니 교수, 연구자(소속 또는 독립)·강사, 대학생, 작가 그룹이 각기 20건을 넘었고, 과학·기술인, 경제학자, 교사, 대학원생이 10건 안팎씩으로 다수 직군을 차지했다. 동시에 주부가 20건 이상, 국내외 활동가 10건 이상, 회사원 9건, 싱글맘 5건 이상, 경영자·임원 5건, 농부·농촌지도자 4건, 벽돌공·대리기사 등 육체노동자 4건, 의사·간호사 4건, 변호사 3건, 음악가 3건, 모델 2건, 감정평가사·군인·해고자 1건씩 등으로 지극히 다양한 영역과 조건에서 응축시켜온 저마다의 ‘발화’ 욕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정·성폭력 피해, 성소수자, 정신질환, 이혼·입양, 장애 등 저마다의 고민과 때로 용기가 요구됐을 법한 이른바 ‘당사자 칼럼’을 제안해준 이들이 적지 않아 눈길이 머물렀다. 이는 <한겨레>의 소임을 확인시키고, ‘입’ 없는 이들과 <한겨레>의 거리를 재려는 것처럼 해석될 만하다.
‘당사자 칼럼’의 주제가 꼭 어둡다, 무겁다와 동의어는 아닌 듯하다. 2030의 관심사는 젠더, 페미니즘, 가족, 자아 등에 자주 닿았고, 전체 제안된 칼럼의 형식은 소설, 공상과학(SF), 웹툰 등으로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노인의 노년 탐구생활, 모자(母子)가 함께 쓰는 귀농 얘기 등 대부분의 기획안은 소재와 필자 간 거리가 전혀 없거나, 되레 아득하여 차별을 꾀하고 있었다.
<한겨레>는 지난 1월 “더 다양한 통찰과 감성을 발굴해 독자와 연결짓길 희망합니다. 희망이 절망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과거가 현재에게, 꿈이 꿈에게,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한칼’ 공모에 나섰다. 그간 엄선해오되 비교적 규격화된 칼럼니스트의 틀거지를 보완하기 위한 미디어 최초의 시도로, 실제 응모자 나이만 봐도 10대부터 80대까지 세대 전체가 말을 걸어온 셈이다.
익히 알 만한 명사뿐만 아니라, 28건은 유럽, 미국, 아시아 등 국외 이주 또는 낯선 경험을 특징 삼고 있다. 하지만 ‘지구 밖의 지구인’도 엄연했다. “저는 E9입니다. 일하러 온. 저는 D4입니다. 공부하러 온. 저는 F6입니다. 결혼하러 온. 저는 G1입니다. 박해를 피하러 온. 저는 불법체류자입니다”라고 밝힌 어느 단체처럼 말이다. 이들 기획안의 주제는 “사람답게, 함께 살아가기를 바랍니다”이지만, 미분하자면 정치, 사회, 인권, 여성, 평화, 생활, 슬픔, 좌절, (때로) 희망, 기쁨이다.
<한겨레>는 한달 심사를 거쳐 최종 칼럼니스트를 선발해 개별 통보할 예정이다. 위 분석은 직업, 성별, 나이 등에 대한 질문 없이 접수한 지원 특성상, 응모자 스스로 밝혀준 정보에만 따른 것이며 중복 분류가 있되, 단체의 응답은 일부만 반영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한칼 응모자들이 제안한 칼럼 주제를 워드클라우드로 시각화했다. 워드클라우드 생성기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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