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이유

등록 2021-02-09 15:50수정 2021-02-10 02:41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대통령의 노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선출된 권력’이라고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 보여주어야 한다. “웃으며 끝까지 함께 투쟁”한 노동자들이 끝내 승리했다는 성취감을 갖는 것이 그토록 두려운가?
한진중공업 영동조선소의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해 12월 30일 복직없이 정년없다며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한 희망뚜벅이 행진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들머리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한진중공업 영동조선소의 마지막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해 12월 30일 복직없이 정년없다며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한 희망뚜벅이 행진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들머리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하종강 ㅣ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2019년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의 직접고용 요구 투쟁이 한창이었을 무렵 방송에 몇 번 출연했다. 특히 청와대 앞 농성장에서 몇 시간 동안 촬영했던 지상파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꽤 높아서 그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민단체 초청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부모들이 주로 참석한 자리여서 다른 나라들의 노동교육에 관한 내용을 주로 설명하느라고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문제까지 자세히 다루지는 못했다. 질의응답까지 모두 끝난 뒤, 다과를 나누는 시간에 한 자리 건너 앉은 사람이 옆 사람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들도 억울하겠다 싶어서 뭐라도 사 들고 방문해야겠다 생각 중이었는데, ‘허울뿐인 정규직화 1500명 집단해고 청와대가 책임져라!’ 그 현수막 보고 그 마음이 싹 사라져버리더라고. 대통령이 뭘 어쨌다고… 왜 대통령한테 시비를 거는 거야? 그 구호 보고 정나미가 다 떨어져버리더라고.”

동료에게 하는 체했지만 정작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돌아다보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 손목에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노란색 팔찌가 채워져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문제에 대한 법원의 판결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수납원들은 입사 시기와 관계없이, 담당하는 업무의 내용이 무엇이든, 소송 제기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 한국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듭되는 법원 판결과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에도 정부가 임명한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그 판결을 전혀 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대통령에게 찾아가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큰 잘못인가?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노동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명예회복과 복직을 요구하며 시작한 ‘희망뚜벅이’ 행진이 지난해 12월30일 부산에서 출발해 40일(실제 도보 행진은 34일) 만인 지난 7일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 암 투병 중인 노동자가 항암 치료를 중단하고 400여킬로미터를 걸었다. 목숨을 걸었다는 뜻이다. 700여명의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한 마지막 날 행진은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흑석역에서 출발해 한진중공업 본사가 있는 용산구 남영역과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단식농성장을 거쳐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마무리됐다.

마무리 집회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박창수·김주익을 변론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세월호·스텔라데이지호는 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 유가족들이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라고 물었다.

노동운동 일체를 반사회적·반국가적 행위로 잘못 알고 있는 극우보수 세력의 “투쟁할 힘이 있으면 일이나 열심히 해라” 따위의 수준 미달 비난은 논외로 하더라도, 평소 자신이 개혁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 중에도 김진숙의 발언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처럼 대통령 한마디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 시대가 아닌데 왜 대통령에게 요구하느냐?”라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는 일찍이 2009년에 김진숙의 해고를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부당해고라고 인정했고 올해 9월 다시 한번 복직을 권고했다. 부산광역시의회는 여야 합의로 김진숙 즉각 복직 결의문을 채택했고, 국회 환경노동위에서도 전례 없이 여야 합의로 ‘김진숙 복직과 명예회복 즉각 이행’ 결의문을 냈고, 각계 인사 233명으로 된 ‘노동자 김진숙의 명예회복과 복직을 위한 노동시민종교인 연석회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복직을 촉구했고, 60여개 보건의료단체와 인권단체, 210개 여성단체와 개인 3700여명, 137명의 사회원로, 국가인권위원장, 국무총리실, 여당 당대표실 등이 나서서 범사회적으로 김진숙의 복직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회사 경영진은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불합리한 핑계를 대며 나 몰라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인가?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대통령의 노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선출된 권력’이라고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 보여주어야 한다. “웃으며 끝까지 함께 투쟁”한 노동자들이 끝내 승리했다는 성취감을 갖는 것이 그토록 두려운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마지막 명령 1.

마지막 명령

국힘 ‘2~3월 퇴진론’…기다렸다간 구속된 대통령 볼 수도 2.

국힘 ‘2~3월 퇴진론’…기다렸다간 구속된 대통령 볼 수도

국힘 ‘2~3월 하야’, 그때까지 ‘대통령 윤석열’ 하란 말인가 3.

국힘 ‘2~3월 하야’, 그때까지 ‘대통령 윤석열’ 하란 말인가

[아침 햇발] 윤상현의 공과 사 / 김이택 4.

[아침 햇발] 윤상현의 공과 사 / 김이택

[사설] ‘국지전’ 유발 의혹 윤석열, 군 통수권 서둘러 빼앗아야 5.

[사설] ‘국지전’ 유발 의혹 윤석열, 군 통수권 서둘러 빼앗아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