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철ㅣ편집인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첫 통화로 1년간의 동행을 시작했다. 대체로 무난한 출발이다. 일주일 간격이 있었지만 일본 총리에 이어 문 대통령이 통화했고, 바이든이 취임한 뒤 통화한 ‘가장 가까운 9개국 정상’에 든 모양새도 나쁘지 않다.
외교의 시간으로 보면 문 대통령에게 남은 1년은 긴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짧다고 할 수도 없다. 아마도 문 대통령이 연초에 구상했을 법한 ‘1년의 버킷리스트’에는 한반도 평화 문제가 상단에 놓여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동안 남북미의 시간은 대체로 엇갈렸다. 디제이가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의 시간표를 짰지만 아들 조지 부시의 등장으로 흐트러졌고, 노무현이 임기 마지막 해 두번째 남북정상회담으로 시간표를 다시 돌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미국 쪽으로도 빌 클린턴 말기의 대북 접근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아들 부시는 임기 막판 뒤늦게 북핵 해결에 관심을 보였지만 이명박이 등장했다.
문재인-바이든, 문재인-김정은의 남은 1년은 어찌 될까. 이번에도 남북미의 엇갈림은 계속될까. 문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과 김정은에겐 최소 4년, 많게는 8년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따로 도는 남북미의 시간에서 최소한의 교집합을 찾는 길은 무엇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첫째, 남북이든 북미든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근본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려는 ‘한건주의’ 방식은 번번이 실패했다. 남북은 모든 게 곧 풀릴 것 같다가도 조금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리는 패턴을 무한 반복했다. 북미는 제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근본 요구만을 내세우며 으르렁댔다.
남북은 이제 차분한 이웃, 담담한 형제 관계로 가는 게 낫다. 북핵 문제가 먼저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담담한 이웃으로 살아가는 과정이 북핵을 푸는 과정일 수 있다. 단계적 경협, 신중한 군축을 통해 지속적이고 실용적인 관계로 가야 한다. 북미도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의 선후를 놓고 기싸움만 할 게 아니라 단계적·동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의 남은 1년은 북핵의 완전 해결보다는 그간 성과를 토대로 이후를 도모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문 대통령이 세 차례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만큼 올해 상반기 중에 실무적으로 다시 만나 지속 가능한 과제 몇몇을 정리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또 앞으로 4~8년 지속될 미국의 대북정책을 제대로 세팅하기 위한 한미 공조도 매우 중요하다.
둘째, 남은 1년 동안 대북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였으면 한다. 현 정부와 여야가 함께 냉정함과 합리성을 더한 대북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국민 정서는 북한도 싫지만 그렇다고 대결적 남북관계로 돌아가는 것도 경계하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에 냉정해진 국민 정서를 반영하되, 평화를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의 경우 ‘달러 받고 풍선 날리는’ 식 말고 합리적인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통로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북한이 전술핵 운운하는 상황에서 대북 핵 억지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백방으로 고민하는 모습도 필요하다.
미중 문제에서도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당당히 나가야 한다. 지난 70년의 역사는 대한민국 체제가 비록 정통성이 부족했지만 북한 체제보다는 우위에 있다는 걸 보여 준다. 그 체제의 기둥이 한미 동맹임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에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중국과 최대한 협력하되, 선을 넘을 경우 일본의 수출규제 파동 때와 같이 결사항전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내보여야 한다.
보수야당은 북한 원전 문건 논란에서 보듯 막무가내식, 색깔론식 대북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집권하기 쉽지 않다. 강경 일변도의 대북관은 평화를 원하는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 북한 원전은 북핵 해법과 맞물린 오래된 외교안보 사안으로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보수야당이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안보도 일정 부분 중도로 이동해야 한다.
셋째, 북한은 한반도 문제의 단순한 상수가 아니라 상황을 변화시키는 주요 변수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북한 스스로 평화를 일궈내야 한다.
김정은만 해도 벌써 집권 10년차인데 그간 성적은 초라하다. 전술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했는지 몰라도 전략적으로 북한은 실패한 비정상국가다. 북핵 폐기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으며 정상국가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인민의 삶을 책임질 수 없다는 걸 북한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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