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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재정 칼럼] ‘원전 지원’ 논란이 빠뜨린 것은

등록 2021-02-07 17:45수정 2021-02-08 11:37

올 1월 조선노동당 발표는 특정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아닌 “핵동력공업” 건설을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다른 차원임을 예감하게 한다. 해서, 최근의 ‘북 원전 지원’ 논쟁은 퇴행적이다. 북의 대규모 원전 건설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2021년은 앞으로 적어도 5년간 한반도 정세의 방향을 결정할 분수령이다. 한반도는 평화와 비핵화의 방향으로 진전할 것인가, 핵 무장의 강화와 군비경쟁의 가속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올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 방향을 정할 것이다. 그리고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정치·경제·제도적 관성이 겹쳐지게 될 것이다. 북이 불가역적 핵 국가로 진입하는 첫해로 기록될 수도 있다.

지난 1월 개최된 북의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는 여러 면에서 주목을 끌었다. 특히 핵무기 관련 부분에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핵무기의 소형 경량화 및 초대형 수소탄 개발뿐만 아니라 “더 위력한 핵탄두” 개발도 관철했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또 대륙간탄도미사일 및 중거리 미사일, 지상 발사 미사일 및 수중 발사 미사일도 ‘탄생'했다고 공언했고 “탄두 조종 능력이 향상된 전지구권 타격 로케트” 개발도 관철했다고 선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무기체계들을 확보했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한국과 미국 군사당국의 대응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 무기체계들이 실재하는 것인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도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기체계가 ‘사업총화보고'에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전략적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시험되지 않은 무기체계들을 언급한 것은 앞으로 이들을 시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공언한 것이고, 향후 정국의 추이에 따라 시험 여부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그 정국 추이의 첫머리에 놓여 있는 것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 경색의 주요 이유로 ‘콕 집어' 명시한 한·미 군사훈련이 재개된다면 신형 핵무기 시험은 북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하나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질 정국경색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미 당국은 독자 제재와 유엔 제재 강화로 대응할 것이고, 북은 이에 반발해 또 다른 무기 시험을 할 것이고, 2021년은 이 악순환의 무한반복으로 점철될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적어도 한반도 정국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서는 한·미 군사훈련 연기가 최소한의 필요조건인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충분조건은 되지 못하는 데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5개년 계획 기간 전력부문 중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핵동력공업 창설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위한 계획들”을 언급했다. 현재로서는 이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5년 동안 ‘핵동력공업'을 창설하기 위한 활동이 즐비하게 전개될 것임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북은 1979년 영변에 5㎿ 실험용 원자로 건설을 시작하여 1986년 완공해 가동을 시작했다. 1981년에는 영변에서 북서쪽으로 약 30㎞ 떨어진 태천에 200㎿의 원자로 건설을 착공했고, 1986년에는 다시 영변에 50㎿의 원자로 건설을 시작했다. 북은 이 원자로를 1996년까지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 두 기의 원자로는 완공되지 못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원자로 건설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공하기로 한 신포 경수로는 2000년대 2차 북핵 위기로 중단되었다.

즉, 북은 만성적 전력 문제를 풀기 위해 적어도 1970년대 후반부터 원자력 발전을 추진했고, 김정은 정권도 이를 이어받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6년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동시에 밀고 나가”라고 촉구한 바 있고, 2019년에도 “원자력 발전 능력을 전망성 있게 조성”하라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올 1월의 발표는 특정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아니라 “핵동력공업” 건설을 5개년 경제개발계획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다른 차원임을 예감하게 한다.

문제는 북이 설령 ‘순수하게' 민수용 전력생산을 위해 핵동력공업을 건설하더라도 핵무기용 물질이 파생된다는 점이다. 또 북의 핵 활동을 금지하는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행위가 될 가능성도 높다. 물론 2005년 9·19 공동성명은 북의 평화적 핵 이용권을 인정한 바 있지만, 북이 본격적으로 ‘핵동력공업' 활동에 들어가게 되면 국제적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해서, 최근의 ‘북 원전 지원' 논쟁은 퇴행적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염려한다면 과거에 비밀리에 원전 지원을 계획했는지를 두고 정쟁을 벌일 일이 아니다. 북의 대규모 원전 건설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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