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과 고통을 잔디 자르듯 싹둑 잘라낸 세상은 당분간 ‘화려한 꿈’으로 남겨둡니다. 상처 하나 넘으면 다음 상처가 오겠지요. 하지만 한 상처가 오면 세상이 기민하게 회복의 힘을 모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아침마다 기어이 찾아 오르는 태양처럼 사느라고 애쓰셨습니다.
이상헌 ㅣ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마당에서 한참 서성거렸습니다. 밤새 산바람이 거칠게 굴어서 별빛마저 초췌한 새벽입니다. 어둠의 시간에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 아침빛이 오더군요. 비와 눈이 섞여서 매섭게 대문을 몰아붙이던 어젯밤도 그랬습니다. 빛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리멍텅한 밝음이 반대편 산꼭대기에 힘겹게 올라서고 나니, 어둡고 찬 기운은 큰 꾸중이라도 들은 것처럼 뒷걸음질하며 물러났습니다. 새벽은 태양의 밝음이 아니라 매일 스스로를 다그치며 일으켜야 하는 태양의 거친 호흡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매일 이른 아침길을 나서야 하는 사람들은 이미 아는 것일 텐데, 저는 책상머리 50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화려한 빛에 눈을 빼앗긴 사람이 애쓰는 노동을 보지 못한 탓이겠지요.
올해는 몹쓸 바이러스와 힘겹게 싸운 해였던 만큼, 회복에 대한 생각도 많아졌습니다.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를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뜨거운 마음으로 키웠던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내린 결론은 “인간은 회복하는 존재”였습니다. 십여년 전에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는 짧은 느낌을 기록하고 책장에 꽂아두었습니다. ‘회복’이란 잘해야 도돌이표일 것이니 애당초 세상의 ‘진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레짐작한 탓입니다. 요즘은 가까이 두고 자주 꺼내 봅니다.
올 초에 조그마한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 왔습니다. 도시의 안락함을 버리고 마당의 고적함을 얻겠다는 심사였는데, 만만치 않더군요. 처음에는 마당이 주는 ‘공간적 여유’만으로도 좋다고 하다가, 금방 ‘가꿀’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잔디도 심어보고, 꽃도 때깔 좋은 것으로 골라다가 심었지요. 화려한 꿈에 도취되어 시작한 일이 잘될 수는 없지요. 손과 발이 부지런해야 될 일을 머리로 했으니, 당연히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옛 주인이 오랫동안 방치했던 마당은 회복을 원했는데, 새 주인은 꽃단장에 열중했다는 것을.
잔디와 잡초를 깎는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수한 생명체가 제각각 자라나는 자연의 ‘공간’을 원하면서도 내 마당은 아스팔트 길처럼 미끈하길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마당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시끌벅적한 기계를 사다가 잔디를 매끈하게 깎았습니다. 딴에는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내 마당은 한치의 불평등도 허용하지 않노라고. 마당의 ‘평등주의’. 한심한 노릇이지만, 정치적 수사에 익숙해진 마음은 이렇게 매사에 이런저런 딱지를 붙이느라고 분주합니다. 무작정 깎아대었습니다.
그런데 잔디를 깎는 이유는 따로 있더군요. 잔디를 제 마음껏 자라도록 내버려두면, 잘 자라는 놈만 계속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다고 합니다. 조금 뒤처져 자라는 잔디에는 햇볕과 물의 ‘기회’가 적어지고, 그러다 보면 잔디는 옆으로 퍼지지 않고 ‘잘난’ 잔디만 경쟁적으로 위로 뻗쳐오르지요. 마당의 흙도 황폐해지고, 마당의 풍경도 싸늘해집니다. 그래서 특출한 재주로 자라난 빛깔 좋은 잔디라 할지라도 더 자라지 못하도록 잘라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옆이 튼튼해지고 잔디밭이 건강해집니다. 그렇다고 잔디를 너무 짧게 잘라도 안 됩니다. 강한 햇살을 피해 빗물을 품어둘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고질병 같은 망상을 접고, 제품설명서를 꼼꼼히 읽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요. 덕분에 마당은 조금씩 회복하는 중입니다. 물론 아직도 곁을 내어주지 않는 잘난 잔디가 골칫덩어리입니다.
집 안쪽에도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보았습니다. 못된 성정 탓인지,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은 내 집 같지가 않았습니다. 손이 불어터지면서도 화장실의 틈새에 실리콘을 붙이고 나서야 편안하게 일을 볼 수 있고, 지하에 나무 바닥을 자르고 붙이고 나서야 지하의 어둠에 익숙해졌습니다. 이도 저도 못할 상황이면 걸레질이라도 했습니다. 집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이라면 몸이 집과 친해져야 하더군요.
어릴 적 시골생활만 믿고 몸을 움직였으니 손에 상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걱정하고 타박하는 소리가 없을 수 없지요. 피가 삐죽 밀고 나오는 곳에 밴드를 하나 붙이고 나서면, 서두르지 말라, 조심하라, 아내의 걱정스러운 잔소리가 뒤따랐습니다. 저는 당연히 장비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장비는 돈 아깝다고 사질 않는 ‘모순적인’ 남편이라면서 아프게 꼬집어버립니다.
겐자부로는 어렸을 때 날카로운 작은 칼을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는 잘 드는 칼을 쓰면 안 된다고 걱정하자, 그는 당돌하게 답했습니다. “다치는 것은 칼이 잘 들어서가 아니라 안 들기 때문이야.” 그의 아버지는 옆에서 아들 편을 들었습니다. 별것 아닌 이 얘기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자신이 입은 상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중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또는 그들을 상처로부터 막지 못하는 것은, 내가 가진 칼이 무뎌서일까 아니면 지나치게 날카로워서일까. 특히 올해는 세계 곳곳에서 칼부림의 결기가 도드라졌습니다. ‘혈투’를 연상케 하는 장면도 더러 있었고, 싸움판이 변화무쌍할수록 애당초 왜 싸웠는지가 묘연해지기도 했지요.
한번은 크게 베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장비 탓인지 내 탓인지조차 생각나지 않더군요. 오로지 피를 막고 얼른 나아서 상처가 덧나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보잘것없는 상처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가 깊고 넓을 때는 누구 탓인지 따지느라고 진검승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상처와 고통으로부터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리고 회복을 돕는 일이 칼을 쥔 사람들이 서둘러야 할 일이고요.
물건 만들다 죽고, 만든 물건 배달하다가 죽고, 심지어 자다가 추워서 얼어 죽기도 합니다. 그 뜻마저 모호해진 ‘진보’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잔디 자르듯 싹둑 잘라낸 세상은 당분간 ‘화려한 꿈’으로 남겨둡니다. 상처 하나 넘으면 다음 상처가 오겠지요. 하지만 한 상처가 오면 세상이 기민하게 회복의 힘을 모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겐자부로는 ‘회복’함으로써 “그 이전보다 확실히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의지적 낙관주의지요. 저는 한 걸음 나가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회복하는 사회’, 그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일하다가 죽지만 않으면, 적어도 회복의 희망은 있겠지요. 어떻게든 살아내겠지요.
올해도 안녕하셨냐고 묻지 않겠습니다. 아침마다 기어이 찾아 오르는 태양처럼 사느라고 애쓰셨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에서는 ‘욕봤다’고 하고, 또 그뿐입니다. 새해도 어렵고 상처투성이겠지요. 하지만, 늘 그랬듯이, 뻔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온기 모아서 회복하겠지요. 아침해가 꾸역꾸역 떠오르는 것처럼. 저는 새벽마다 마당에 나가, 그런 당신을 오랫동안 바라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