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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일본 기업 맞서 한국노동자 돕는…우리는 오자와가 될 수 있을까

등록 2024-01-02 15:57

[이상헌의 바깥길]
한국방송(KBS) 다큐 인사이트 ‘일본사람 오자와’. 한국방송 제공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몹쓸 안개가 짙어가던 늦가을 밤, 제네바 중앙역에 기차가 힘겹게 멈춰 섰다. 열명 남짓한 한국인들이 조심스럽게 플랫폼에 발을 내디디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나는 서둘러 다가가 ‘먼 길 오시느라고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전했다. 일행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단호함이 겹쳐졌다. “뼈를 묻을 각오로 여기에 왔습니다.” 20년 전, 한국네슬레 노동자의 스위스 원정투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백건대, 나는 그 비장하고 단호한 각오가 불안했다. 정교한 전략도 없이 기댈 곳 없는 스위스에 와서 기약 없는 싸움을 어찌할 것인지. 일행을 맞이하러 나온 국제식품노련 관계자의 표정도 막막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에 네슬레는 한국 공장 해외 이전이라는 협박으로 맞서면서 100일 넘게 파업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따지기 위해 네슬레 본사를 찾아왔다는 점을 쉴 새 없이 알렸다.

어려운 싸움이었다. 금전적 부담도 만만찮은데다가,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해결해야 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스위스 여론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다. 스위스 본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행은 현지 언어를 전혀 알지 못했다. 도움의 손길이 있었지만, 오래 기댈 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와 나도 힘을 보태었으나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원정투쟁 열흘 만에 한국에서 협상이 타결되어 원정투쟁은 마무리되었다. 우리 부부는 감격하면서도 안도했다.

갑자기 이 일이 생각난 것은 얼마 전 방송된 다큐멘터리 ‘일본사람 오자와’ 때문이었다. 오자와 부부(오자와 다카시와 오자와 구니코)는 1990년대부터 일본 기업을 상대로 원정투쟁하러 오는 한국 노동자들을 도왔다. 젊은 시절 개인적 시련을 겪으면서도 ‘싸우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필생의 업으로 삼아온 부부는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길을 택했다. ‘조국’ 일본의 기업을 상대로 싸우는 ‘외국 노동자’와 일본 땅에서 어깨를 같이하는 일. 다른 나라에서 고통받는 정치인이나 노동자를 위해 자신의 나라에서 목소리와 돈을 보태는 일보다 훨씬 힘겨운 일이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이 아닌가.

시작은 1989년 수미다전기가 한국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을 전원 해고한다는 결정을 담은 팩스 한장이었다. 한국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자 노동자 대표단은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는 혈서를 남기고 일본으로 갔다. 비행기도 처음 타보는 상황이었으니, 싸울 각오 말고 준비된 것은 없었다. 이 막막하고 참담한 상황에서 아내 구니코는 위암 수술에서 채 회복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남편 다카시와 한국에서 온 노동자들을 온 힘으로 도왔다. 노동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조직했다. 학생과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섰다. 노동자 대표단이 얼마 버티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무시, 무대응, 버티기’ 전략에 기대고 있던 회사에 일본 지역 시민들은 ‘바로 여기에 365일 동안 싸울 사람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했다.

대표단의 싸움은 더 강력해졌다. 오자와 부부를 비롯한 일본 시민들의 도움 덕분에 단식마저도 ‘축제’ 같았다고 한다. 싸움은 무려 206일 동안 이어졌고, 결국 수미다 본사는 항복했다. 한국 노동자와 일본 시민들은 ‘아침이슬’을 같이 불렀다. 늘 그랬듯이, 오자와 부부가 앞서서 불렀다. 그리고 승리의 감흥이 가시기도 전에, 아내 구니코는 곧 한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한국 노동자들의 싸움을 더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언어, 사회, 역사를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 오자와 부부의 ‘연대기’는 화려하다. 일본 기업과의 대화와 협상을 위해 한국 노동자들이 현해탄을 건너올 때마다 그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오자와 부부였다. 노조원들이 귀하게 모은 투쟁자금을 아껴야 한다면서 국수 같은 것을 팔면서 보급투쟁을 하라는 ‘잔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이 부부의 쩌렁쩌렁하고도 집요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던 기업들의 명단도 매년 길어졌다. 씨티즌정밀, 한국야마모토, 한국산연(일본산켄전기), 한국와이퍼(일본 덴소),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경찰과 맞서다 고생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몇년 전 코로나19가 창궐하여 원정투쟁마저 불가능했던 시절 남편 다카시는 한국 해고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매일 회사 앞을 찾아가 대화를 요구하다가 체포된 뒤 구속되었다. 7개월 감옥 생활 끝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동안 아내 구니코는 유방암 수술을 견뎌냈다. 추운 겨울날 다카시가 풀려나던 날, 구니코는 꽃 한다발을 들고 기다렸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껴안았다. 다카시는 고맙다는 말끝에 “한국 분들의 싸움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걱정했다.

한국의 노동 현실은 여전히 어렵지만, 같이 힘을 보태어 싸운 덕분에 좋아진 것들도 적지 않다. 때로는 안에서, 때로는 밖에서 ‘뼈를 묻을’, ‘패배할 수 없다’는 각오로 싸워온 덕분이다. 그리고 바깥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안쪽 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바깥의 힘을 더 끌어올리기도 했다. 국제적 명성이 있는 단체와 개인의 지원은 정치적 힘과 여론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오자와 부부와 같은 이들도 있다. 한국어 노래와 율동까지 부지런히 배우면서 한국의 노동을 제 삶의 안으로 온전히 끌어들인 외국인들도 있다. 자신이 사는 땅에서 고통받는 타인들을 위해 자신의 나라를 맹렬히 몰아붙이는 삶을 묵묵히 지켜온 사람들도 있다.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미국에도 있다. 우리가 애써 알려 하지 않으면 금세 잊힐 사람들.

‘선진국 한국’은 세계에서 맹렬하다. 한국 돈을 끌어오기 위한 경쟁도 만만찮다. 경탄의 소리도, 파열음도 들린다. 노동조건 개선 요구에 폭압적인 반응을 보인 한국 기업들 소식도 끊이지 않고, 밤새 보따리 싸서 다른 곳으로 사라지는 기괴한 일도 있다. 언젠가, 이런 기업의 노동자들이 서울로 찾아들 것이다. 결연한 각오 말고는 가진 것 없이 그들은 서울의 어느 거리에서 설익은 한국말로 외쳐댈 것이다. 이미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오자와가 될 수 있을까. 오자와 부부 같은 이들이 손 내밀어 힘을 보태자고 할 때 그 손을 꼭 잡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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