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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공공임대가 부러우면 국민이 아닌가? / 김소민

등록 2020-12-18 13:20수정 2020-12-19 02:34

화성동탄 공공임대(행복주택) 전용면적 13평(44㎡), 공급면적 21평 투룸형 내부 사진. 엘에이치 제공
화성동탄 공공임대(행복주택) 전용면적 13평(44㎡), 공급면적 21평 투룸형 내부 사진. 엘에이치 제공

집값 기사를 읽다 ‘의문의 일패’를 당한다. “수도권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주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 주민의 자산 가치를 조롱 내지 폄하한 국토부 장관의 부적절하고 개념 없는 발언을 엄정히 규탄한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수도권에 5억 이하 (아파트가) 있다”며 “저희 집 정도는 디딤돌대출로 살 수 있다”고 답한 뒤 김 전 장관이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연합회가 내놓은 성명을 기사로 읽고 나서도 그랬다.

이 성명이 김현미 전 장관의 답변보다 내게는 더 ‘조롱’이었다. 나는 김현미 전 장관이 사는 지역의 1억6천여만원짜리 아파트에 산다. 이곳 아파트 32평은 3억원대다. 자기 집값도 제대로 모르냐고 지적할 수는 있는데 수도권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로 ‘오인’되는 게 왜 경악하고 분노할 일일까? 실제로 그런 아파트에 살 가능성이 큰 나는 수치스러워해야 하나? 싼 아파트에 산다는 오해를 사는 걸 조롱으로 느끼는 데는 아파트값이 자신의 계급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파트 가치에 대한 조롱은 곧 자신의 가치에 대한 조롱이 되는 셈이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현타’가 온다. 6억여원짜리를 5억원으로 말했다고 조롱이라고 격분한 사람들에게, 그 분노에 공감한 언론에게 훨씬 싼 아파트에 사는 내 ‘가치’는 어떻게 보일까? 자괴감이 든다. 이름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 조롱을 막는 방패로 삼고 싶은 욕망이 솟는다. “‘호텔 거지’ 소리 들어도 좋으니 거기 살아 봤으면 좋겠어요. 전 아마 안 되겠죠.” 호텔을 리모델링한 청년주택 ‘안암생활’의 입주 경쟁률은 2.3 대 1이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정연(25)씨는 대학 4년 동안 네 번 이사했다. 첫번째는 고시원, 여성전용이라 월세가 비쌌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방은 3평이었다. 좀 넓은 집을 찾았다. 전세 6천만원짜리 13평 반지하방은 볕이 들지 않았다. 그 집에서 정연씨는 방역 전문가로 거듭났다. 바퀴가 많았다. 주인이 정화조 청소를 제때 하지 않아 오물이 화장실에 넘쳐흐른 적이 있다. 주인은 “좋게, 좋게 하자”고 했다. 정연씨는 일주일 동안 자기 돈으로 공중목욕탕에서 씻었다. 그는 지금 엘에이치(LH) 대학생 전세대출 1억2천만원을 받아 6평 원룸에 살며 매달 30만원씩 갚아 나가고 있다. 여전히 볕이 들지 않는다.

정부가 자랑한 공공임대주택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청년은 주방시설이 없는 ‘가성비’ 우선 주택에 살아야 하느냐는 비판에 공감한다. 전용면적 44㎡짜리 행복주택에 어른 둘, 아이 둘 살란 말이냐 화낼 수 있다. 그 분노를 언론이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이 분노했다’라고는 쓰지 말았어야 했다. <조선일보>는 “‘손님 없는 호텔 개조해 전세로’ 국민 울화까지 돋운다”는 사설을 썼는데 국민인 정연씨는 화나지 않았다. ‘전용면적 44㎡에 4인 가족’이 대통령의 발언이었냐 질문이었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자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이 “백번 양보해 13평 (사실 21평이다) 아파트를 보고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은 그럼 상식적인가”라고 비판했다고 <조선일보>는 보도했다.전용면적 46㎡인 우리 집 옆집엔 아이 둘과 부부가 산다. 이 환경이 이상적이란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타인이 이 삶을 ‘비상식적’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김은혜 의원이나 <조선일보>가 보기엔 ‘비상식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행복주택이나 안암생활이 분노가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국민이 분노한다’ 류의 기사를 보면, 이들은 국민도 아닌가 보다.

김소민 ㅣ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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