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대응과 개혁입법 제정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집권 권력의 무책임 및 허약함과 거대자본·건물주의 강한 힘, 그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권력의 세심한 배려다. 무능, 무책임은 불신을 낳고 사회 전체에 심각한 역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책과 제도를 믿지 않고 서로 믿지 않게 된다.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각자도생이 심화된다.
언제부터인지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은 ‘앞’길보다는 ‘뒷’길을 좋아하고 있다. 2020년 끝자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느끼는 나의 소회다. 선제적·능동적 리더십을 발휘하기는커녕 임시변통식 뒷북대응 하기, 멀쩡한 약속을 배신 때리고 뒤통수치기, 이 두가지 행태가 촛불정부라는 현 정부와 무려 174석이나 차지한 집권여당의 정치 수준인지, 씁쓸하다.
#뒷북 1번. 케이(K)-방역이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으로 1일 확진자가 1천명을 넘어섰다. 특히 수도권 병상 부족이 심각하다. 3단계로 격상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겨울철 대유행에 대비하고 병상 부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케이방역은 성공했다 해도 한꺼풀 벗겨보면 케이의료는 실패했다는 지적, 부실한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하고 병상동원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진지한 진단과 대안이 시민사회에서 제시되었었다. 이 경고, 진단과 대안들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이 입증되고 있다. 정부는 병상동원 체계를 수립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무슨 생각인지 2021년 예산에서 공공병원 확충 예산은 전혀 편성하지도 않았다.
뒤늦게 컨테이너 설치를 대안이라고 내놓고 2025년까지 공공병상 확충계획을 발표했는데 딱하기만 하다. 정부의 뒷북대응과 허약한 민간병원 눈치보기 때문에 대형 민간병원들이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이런 무력, 무책임한 눈치보기를 그만두고, 90% 병상을 가진 민간병원이 병상을 내놓게 긴급동원 명령을 내려야 할 것이다.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진작 시행하고 있는 조치를 왜 케이방역 모범국이라는 한국이 못 하고 있을까? 얼마나 한국 의료체계가 민간 쪽에 기울어져 있는지, 정부의 민주적 규율 능력이 허약한지 잘 말해준다.
임대료 문제 대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뒤로 빠지고 임대인 선의에 기대는 착한 임대인운동은 처음부터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문제가 심각해지자 대통령이 임대료 부담이 공정한가라며 공론화하는 상황이 됐다. 역시 뒷북이다. 미국, 유럽은 자영업자 대책이 우리보다 훨씬 선제적이고 두텁다.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고 임대인도 고통을 분담한다. 미국이 케어스법에 의해 임대료 연체 때 강제퇴거를 금지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독일, 캐나다, 일본은 정부가 임대료를 직접 지원하며 독일의 경우 임대료 포함 고정비의 최대 90%까지 직접 지원한다. 마침 정의당에서 임대인, 임차인, 정부 삼자가 3분의 1씩 분담하는 대안을 냈는데 구체적인 안은 더 검토해야겠지만 우리 정부는 왜 이런 유의 안을 선제적으로 시행하지 못할까?
#뒤통수 1번. 개혁입법이 반토막 났다. 한국 자본주의의 고질병은 견제와 균형, 규율 기제가 형편없이 취약하고 이 때문에 무책임자본주의 성격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오래된 병증이지만 재벌과 밀월행으로 나아가고 촛불이 희미해진 이 정부에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재벌 총수가 기업을 사유화할뿐더러 국정을 농단해도, 뻔히 법을 유린하고 조롱하는 온갖 못된 짓을 저질러도, 거대기업이 비용을 외부에, 하청기업에 전가해 이익은 사유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해도, 하청기업 위험노동자가 연일 죽어나가도 이를 바로잡는 건강한 견제력·규율력이 미비되어 있다. 이번에 모처럼 일정에 오른 개혁입법들은 최소한의 견제, 규율 기제를 도입해 책임자본주의 체질로 바꾸고 시급한 하청노동자의 안전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률 1위의 나라 한국에는 일하다 죽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일하다 죽지 않게 국민 10만명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고 국회에서 정의당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까지 모두 법안을 발의했다. 무엇보다 안전의무 이행 여부에 대해 입증 책임을 기업과 경영자가 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고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규정해야 한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정기국회에서 소위원회 안건으로도 채택되지 못하고 밀려났다. 이낙연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의 무책임이 가장 크다. 왜 이러는 걸까. 작가 김훈이 딱 맞는 말을 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중시키거나 이윤 추구를 불편하게 하는 일의 두려움은 한국 사회에 토착된 풍토병이다. 대기업이 국민과 국가를 먹여 살린다는 자비의 설화가 입법 과정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공정경제 3법이 통과되긴 했지만 입법 취지가 크게 퇴색했다. 무엇보다 상법개정안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 때의 ‘3% 룰’이 변질됐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합산해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을 지분합산 요건을 적용하지 않게 완화시켰다. 재계와 야당의 요구에 맞춤형으로 상법 개정의 핵심 부분이 개악된 것이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공연히 재벌을 감싸온 상황에서 담합 행위에 대해 공정위 고발이 없더라도 검찰이 수사할 수 있게 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안이 없었던 일로 됐다. 전속고발제 폐지는 대선 공약일뿐더러 공정거래제도의 정상화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로서 시민사회와 학계가 줄곧 촉구했던 사안이다. 이 건과 관련해 민주당이 어처구니없게 정의당의 뒤통수를 쳤는데 뒤통수 맞고 사기당한 것은 정의당만이 아니라 공약을 내건 대통령, 전속고발권 폐지를 요구해온 시민사회 그리고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바라는 국민 모두다. “경제계의 많은 요구가 있었다”고 실토한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말이 사태의 진상을 잘 알려준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담은 상법개정안과 집단소송법은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코로나 위기, 기후위기, 불평등 위기가 겹친 오늘의 복합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 안전을 지키는 일, 일하다 죽지 않게 안전권, 노동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일,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고 불균형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일이 지독하게 힘겨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촛불항쟁의 힘으로 수립된 촛불정부, 174석의 거대 여당의 지배하에서 우리는 뒷북질하고 뒤통수치는 무책임 정치를 보고 있다. 코로나 위기 대응과 개혁입법 제정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집권 권력의 무책임 및 허약함과 거대자본·건물주의 강한 힘, 그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권력의 세심한 배려다. 무능, 무책임은 불신을 낳고 사회 전체에 심각한 역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정책과 제도를 믿지 않고 서로 믿지 않게 된다.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각자도생이 심화된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3기 연성 민주정부가 노정한 무능, 무책임과 그에 따른 불신이 생태복지 국가로 가는 정의로운 전환의 길을 어둡게 할까 두렵다. 뒷북대응인 탄소중립 선언마저 뒤통수치기가 될까 무섭다.
이병천ㅣ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