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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병천 칼럼] 갈라진 대한민국과 국민통합의 운명

등록 2022-03-10 18:37수정 2022-03-11 02:32

초박빙의 접전 끝에 국민의 최종 선택을 받은 이는 윤석열 후보였다. 다시 촛불이 눈물을 흘리며 묻는다. 이제 갈라질 대로 갈라진 대한민국에서 사회경제적 통합과 정치적 통합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포함한 삼중전환 과제의 행방은 어찌 될까? 윤 당선자는 이 시대과제와 마주해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이병천 |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봄이 오고 있다. 하지만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에도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경쟁은 치열하다. 그 틈바구니에서 약자와 소수자들은 부당하게 차별받고 모욕당하고 배제된다. 먹고살기 힘들어 고통받고 끼여 죽고 깔려 죽고 빠져 죽는다. 강자의 오만과 탐욕, 그들끼리 해먹는 어두운 결탁이 일을 그르친다.

기후위기 속도가 빨라지고 위험도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고통은 사회적 약자에 더욱 가혹하다. 생태적 전환은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체제의 정의로운 전환과 같이 가지 않으면 불공정, 불평등한 전환이 되고 심각한 갈등을 면치 못한다. 미국 및 서방의 공세적 동진외교와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리는 평화의 봄도 빼앗겼다. 신냉전의 어둠이 드리운 때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이웃 폴란드 시민들의 환대, 우크라이나 평화를 기원하며 열린 한국의 촛불집회에서 한줄기 푸른 희망을 본다.

불평등·기후위기·신냉전이 겹친 대전환기 2022년 3월 거대 양당 후보 모두가 특검 대상인 역대급 비호감 대선에서 한국인은 어떤 선택을 했나? 이 선택의 의미는 실로 중대하다. 촛불항쟁에 힘입어 불평등과 양극화 극복을 열망한 촛불민심을 안고 출범했던 문재인 정부는 안이하고 무책임하게 갈 길을 잃고 국민통합의 시대과제를 저버렸다.

정부가 빠르게 재벌과 밀월행각을 벌이고 불로소득 성장체제를 재가동하면서 촛불연합은 진작 깨어졌고 촛불연정은 물 건너갔다. 뉴딜을 불러왔지만 뉴딜형 다수자 연합을 만들기 위해 어떤 정치를 해야 할지 고민은 없었다. 이 정부 아래 한국은 자산소유자 지배사회 모습이 뚜렷해졌다. 불평등의 벽과 고통이 여전한 가운데 내로남불식 위선과 불공정, 그에 따른 불신이 포개졌다. 촛불을 삼킨 중도 기득권 권력에 대한 배신감이 커지고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180석으로 무엇을 했던가. 사이다 별명을 가졌던 이재명 후보는 뒷걸음질 끝에 거의 민주당 주류색으로 탈색됐다. 세금은 확 줄이고 공급은 팍 늘린다는 부동산 공약은 윤석열 후보와 오십보백보였다. 인플레가 심했던 기본소득은 별반 소구력을 갖지 못했고 대장동 특혜 의혹에 발목이 잡혔다. 막판에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을 던졌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박근혜의 몰락 이후 단기간에 다시 보수 정당이 부활되어 진열을 재정비한 것의 8할(?)은 중도권력이 키웠다. 그런 후 그들끼리 공생하며 닮아가는가 하면 다른 한편 치열하게 경쟁한다(이른바 적대적 공생). 하지만 한국 정치게임의 흥미로운 특징은 중도권력의 무책임 정치에도 불구하고 우파 대안의 능력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검찰총장 출신 정치신인을 새 대안 후보로 세웠다. 인물보다 세력이 우선이라지만 리더가 될 인물은 중요하다. 그런데 윤석열은 미국의 우익 포퓰리스트 트럼프 같은 대중성과 소구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도 트럼프를 따라하듯 차별과 혐오, 갈라치기 전략을 거침없이 구사했지만 훨씬 더 구태에 젖어 있었다. 트럼프는 공화당이 힘겨울 만큼 파격이었던 반면 윤석열은 과거 세력에 둘러싸였고 미래경쟁력보다 집권세력의 실정에 기대었다. 그도 대장동 의혹에 연루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결코 보수의 혁신은 없었다. 이리하여 높은 정권교체 민심에도 불구하고 3월9일 피 말리는 초박빙의 양당 진영정치가 연출되었던 것이다.

대선 기간 중 시민사회 여러 곳에서 후보 공약을 평가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지식인선언네트워크에서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공동으로 연속토론회를 진행한 바 있다. 공약대로 실현되진 않지만 기본방향은 알 수 있다. 참고로 참여연대가 5개 분야에 걸쳐 정리해 놓은 공약평가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개혁, 권력기관 개혁 공약의 경우, 이재명은 개헌과 검찰개혁 분야 말고는 현상유지에 중점을 두었다. 윤석열은 아예 공약이 없어 평가가 불가능하고 검찰 권한을 강화하는 공약만 두드러졌다. 심상정은 매우 개혁적이고 구체적인 공약이 많았으며 국정원 개혁 공약을 유일하게 제시했다.

주거·부동산 공약의 경우, 이재명은 공공주택의 공급 의지는 강하지만 주거복지 공약이 거의 없었다. 국토보유세는 자산불평등 완화 계기가 될 수는 있어도 모순되게 부동산 부양책을 함께 제시했다. 윤석열은 투기를 부추기고 주택가격을 불안정하게 할 공약이 기조였고 세입자보다 주택 소유자 이익을 중심에 두었다. 심상정은 공공주택 공급 의지가 높고, 세입자 친화적 주거정책을 제시했다. 개발이익 환수, 보유세 강화 등 자산불평등 완화 정책이 우수했다.

재벌개혁·민생 공약의 경우, 이재명은 불공정행위, 손실보상 공약은 대체로 충실하나 가계부채 축소 목표는 없었다. 윤석열은 손실보상 공약이 과감했지만 민생 공약은 부실하고 재벌 이해를 충실히 대변했다. 심상정은 경제민주화와 민생 살리기를 위한 다양한 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복지·노동 공약의 경우, 이재명은 개혁의지는 보였으나 복지 확대와 코로나 극복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이 없었다. 상시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을 제시하면서도 기업 친화적 경향을 보였다. 윤석열은 부자감세는 물론 공공의료 약화 공약을 제시했다. 노동 공약 또한 대부분 기업 이해 우선적이고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반개혁 정책을 제시했다. 심상정은 사회보장의 국가책임 강화를 위한 구체적 정책과 증세 기조를 명확히 보였다. 특히 노동이 당당한 나라 공약이 돋보였다.

외교·국방 공약의 경우, 이재명은 남북합의 이행, 평화체제·비핵화 동시 추진을 적절히 제시했으나, 핵추진 잠수함 등 평화구축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군비증강책을 내놓았다. 윤석열은 제재와 압박 일변도로 비핵화 진전을 불가능케 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과도한 군비증강계획, 한-미 동맹에만 일방적으로 치우친 외교정책은 시대착오적이었다. 심상정은 가장 현실적이고 평화지향적인 한반도 정책을 내놓았으며, 선제적 군비동결과 군축공약이 돋보였다.

이처럼 시민사회 눈으로 본 후보 공약 평가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윤석열 후보는 꼴찌였고, 이재명 후보는 중간에 그쳤다. 또한 심상정의 1번 공약이 기후위기 극복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티브이(TV)토론에서도 심상정은 가장 스마트했으며 목소리 지워진 자들을 향한 마지막 1분은 반향이 컸다.

초박빙의 접전 끝에 국민의 최종 선택을 받은 이는 윤석열 후보였다. 다시 촛불이 눈물을 흘리며 묻는다. 이제 갈라질 대로 갈라진 대한민국에서 사회경제적 통합과 정치적 통합 그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포함한 삼중전환 과제의 행방은 어찌 될까? 윤 당선자는 이 시대과제와 마주해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새 정부가 승리에 취해 국민통합과 공존의 정치를 거역하고 갈라치기 관성을 버리지 못하면 큰 역풍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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