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힘겨울지도 모를 또 다른 한 해를 서툴더라도 존재의 품위를 끝까지 지키며 살아내 보자고. 모두 함께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도 건강할 수 없다는 코로나의 교훈을 기억하자고. 먼 훗날, 아니 죽어서도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었다 말할 수 있기를….
신영전 ㅣ 한양대 의대 교수
“당신은 왜 언제나 침묵하고 계십니까?” 이 말은 17세기 일본 에도시대 가톨릭 탄압을 다룬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말이다. 선교사 로드리고는 많은 신도들이 고문 끝에 순교할 때조차 침묵하는 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신이 메시아라면) 지금이 그때다! 지금은 하늘의 권능을 보여야 한다!/…/ 이 아픔 속에서 구하라!” 이 말은 김동리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사반이 예수에게 한 말이다. 사반은 유대인들을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려 봉기한 혈맹당의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예수는 끝내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2020년 초부터 전 세계에 몰아친 코로나 대유행으로 현재 7천만명 가까운 확진자와 150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사상자 수 7천만명에 달하는 수치이며, 누구의 말처럼 지금 인류는 제3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 유행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운데도 하늘은 언제나 그랬듯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내일 그가 온대요.”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설 속 양치기의 말대로 내일 ‘그’가 온다면, 그에게 제일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당신은 왜 언제나 침묵하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그는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아담, 그때 그대는 어디에 있었는가?” 코로나 환자를 입원시킬 병상이 없어 그들 대신 강제 퇴원 당한 기존 입원 환자들이 길거리를 헤맬 때, 인도 노이다에 살던 8개월 된 임신부 니람이 코로나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8개의 병원을 찾았으나 아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길에서 숨을 거두었을 때, 21일간 봉쇄령이 내려지자 일감을 잃은 인도 노동자들이 맨발로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미국의 경제제재로 약을 구할 수 없게 되어 근육위축을 앓고 있는 이란의 어린 소녀 이스라가 가쁜 숨을 내쉬고 있을 때, 우간다 5살 소년 럭키가 헌 종이상자를 찢어 만든 마스크를 쓰고 있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는가?
“호수의 풀들은 시들어 가고 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네.” 무분별한 살충제 살포와 환경오염으로 봄이 되어도 강남 갔던 제비들이 돌아오지 않고 봄마저 침묵하게 만든 이는 누구인가? “모두들 기후변화가 존재론적 위협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하지만 왜 여전히 예전처럼 살고 있나요?” 어린 소녀 툰베리의 질문에 침묵하고 있는 이는 나인가 너인가?
다행히 지난달 20일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APEC) 정상들은 “진단검사, 필수 의료 물품과 서비스의 개발, 생산, 제조와 분배 등에 협력해야 하며 백신 등 의학대책에 공평한 접근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는 쿠알라룸푸르 선언을 채택했다. 또한 코로나 백신을 가난한 나라들을 포함하여 세계 모든 국가에 충분하고 공정하게 배분하자는 목적에 따라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과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병혁신연합(CEPI)이 다국가 연합체인 코백스(COVAX facility)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강대국과 영리를 지향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다. 최근 화이자, 바이오엔테크, 모더나 등 제약사들이 희망적인 백신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해 많은 이들의 기대가 높아졌지만 미국 등 부자 나라들은 내년 예상 백신 생산량을 선점한 상태다. 미국은 코백스 참여도 거부했다. ‘백신 민족주의’란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영리 제약회사는 백신값을 올려 이참에 큰 이익을 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뭐라고 할 것이 아니다. 우리도 없는데 왜 다른 나라에 마스크를 보내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던 이들, 그 시간 “그래도 일부는 어려운 이들과 나누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입안으로만 삼키고 침묵했던 이들 속에 우리의 이름이 있었다. 극소수의 간절한 호소는 끝내 다수의 반대와 침묵에 묻혔다. 한 국가, 한 문명의 종말은 예언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침묵시켜 오는 법이다. 그래도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작은 용기를 내어 이 무겁고 긴 침묵의 벽을 향해 외쳐본다.
“벌써 12월, 20여일 후 우리는 한 살을 더 먹는다. 2020년 쉽지 않은 시간들을 버텨 오늘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 말을 바친다. 어쩌면 더 힘겨울지도 모를 또 다른 한 해를 서툴더라도 존재의 품위를 끝까지 지키며 살아내 보자고. 모두 함께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도 건강할 수 없다는 코로나의 교훈을 기억하자고. 먼 훗날, 아니 죽어서도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었다 말할 수 있기를….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우리의 2020년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