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 ㅣ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올해를 돌아보면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역대 최장 장마로 기록된 올해 54일 동안의 먹구름 아래에서 우리는 비가 그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끝나자마자 불볕더위와 함께 이런 장마가 내년에 또 올 수 있다는 경고가 우리를 반겼지만 상관없었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고진감래의 진리를 재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우리보다 더한 곳도 많지 않던가? 하와이 오아후섬의 마우나윌리는 1939~40년에 걸쳐 무려 331일 동안 거르지 않고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렇게 계속 축축할 바엔 차라리 건조한 게 났다고 생각한다면 칠레의 아리카를 보고 정신 차릴 수 있다. 이곳은 1903년 10월에서 1918년 1월까지 173개월 동안 단 한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런 기록을 보다 보면 그간의 폭염, 가뭄, 장마는 다 견딜 만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늘의 뜻이라도 기다리면 결국 끝이 보인다. 그것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늘의 뜻에 관여하는 시대라면? 장마든 가뭄이든 앞으로 기상현상이 더 극단화된다는 것이 기후변화의 주된 예측이다. 그런 기후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우리인데 그저 기다림의 지혜만 강조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편으로는 끈기와 참을성을 갖추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태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 상황이 정상이 아님을 알고, 정상적인 삶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기준을 고수하는 자세도 무척 중요한 것이다.
날씨보다 올해 기다림의 한계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은 바로 코로나19이다. 참고 기다렸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우리의 문명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후처럼 이 문제에도 우리가 크게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확진자 수가 줄기만을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수정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가령 수도권 집중·과밀 문제, 승강기처럼 공동 밀폐시설에 의존한 주거문화, 환기시설의 부재 등의 이슈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해결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들리는 것은 ‘가만히 있으라’처럼 기다림과 수동적인 자세의 강조뿐이다. 그리고 그 또한 지나치다. 최근 강제되고 있는 마스크 사용법은, 식당 및 카페에서도 음식·음료를 섭취할 때를 제외하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하지만 이는 개인영역에 대한 지나친 침해이다. 한 모금 마시고 다음 모금 마실 때 사이의 시간까지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 내가 오물오물 씹고 있는지 아니면 실은 안 먹고 있는지조차 평가의 대상이라는 말인가? 심지어는 목욕탕에서도 탕을 제외한 곳에선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한다. 마스크가 젖는 당연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삶을 이토록 억지스럽게 분할할 수 있다는 발상이 황당한 것이다. 게다가 업주에게 훨씬 높게 부여한 과태료는 시민 간의 감시와 경계를 부추기는 조치이다.
마스크는 이제 더 이상 강조 또는 강제할 수 없는 시점까지 와 있다. 이 이상 어쩌란 말인가? 공공복리를 위해 기본권을 제한함에 있어서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미 대다수가 잘하고 있는 것을 계속해서 무리하게 강화할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야 하는 삶과 미래를 위한 인내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방역을 잘하게 된 데에는 미세먼지라는 악재가 기여하였다. 이미 공기 문제로 마스크가 생활화된 우리는 어쩌면 코로나 시대에 미리 대비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너무 익숙해지고 나면 그 이전을 잊기가 쉬워지고 그만큼 능동적인 회복의 의지도 줄어든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만큼 자유의 본질적인 영역을 지키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마스크 미착용 과태료 부과 첫날인 지난 11월 13일 오전 서울 광화문역에서 시민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