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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용석의 언어탐방] 딜레마: 성난 황소의 두 뿔

등록 2020-12-01 17:04수정 2020-12-02 02:42

사소한 것에서는 딜레마를 무수히 인식하면서도, 진정 균형을 잡고 살아야 했을 것에서는 딜레마가 잠재하는 상황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어떤 경우든 ‘인간은 딜레마를 만드는 동물’임을 깨닫게 된다. 사소한 딜레마는 만들어내고 중요한 딜레마의 가능성은 간과하면서 결국 삶을 엄중한 딜레마 속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ㅣ 철학자

로니는 우연히 제니바의 외도를 목격하게 된다. 제니바가 누구인가. 로니의 둘도 없는 친구 닉의 아내이다. 로니와 닉은 학교 동창일 뿐만 아니라 동업자이기도 하다. 결혼을 앞둔 로니는 약혼녀 베스와 함께 닉과 제니바 부부와 넷이서 잘 어울리는 사이다. 로니는 금슬 좋은 이들 부부가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로니는 자기 눈을 의심하며 제니바의 상대 남자를 확인하기까지 한다. 로니의 일상은 엉망이 되고 베스는 오히려 로니가 이상해졌다고 의심한다.

로니는 친구에게 사실을 말해야 할까 모른 척 가만히 있어야 할까. 말을 해서 좋을 게 없고, 말을 안 하면 더 나쁠 것 같다. 아니면 제니바의 외도를 못 봤던 걸로 할까. 하지만 이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선택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론 하워드 감독은 영화 <딜레마>의 이야기를 몰고 가는 ‘도발적 사건’의 상황을 이렇게 설정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딜레마에 빠진다. ‘빠진다’라는 표현 자체가 딜레마가 어떤 상황인지 잘 말해준다. 딜레마(dilemma)의 사전적 정의는 ‘두(di) 개의 명제(lemma)’라는 그리스어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인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형식논리학에서의 딜레마 및 이를 윤리학에 적용해서 설정하는 극단적 가설 등은 타당한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데, 이는 일상적이지 않으므로 제쳐두기로 하자. 요즘은 중고등학교 수업에서도 활용한다는 ‘죄수의 딜레마’ 같은 게임이론도 사고 훈련에 쓰일 수는 있으나,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이 형사 사범이 되는 경우가 일상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딜레마라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아주 곤란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흔히 이 말을 쓰는 것 같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짬짜 딜레마’라고 한다. 여럿이 모여 중국음식을 주문할 때, 선택은 대개 ‘짬뽕’ 아니면 ‘짜장면’이다. 짬뽕을 선택하고 나면 막상 동료가 시킨 짜장면이 너무 맛있어 보인다고 한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선물을 고를 때 ‘가’와 ‘나’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즐거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주어진 선택 대상이 둘 다 환상적일 때도 딜레마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일종의 ‘유쾌한 딜레마’라고 해두자.

‘불쾌한 딜레마’도 있을 터인데, 이것이 언급한 사전적 정의에 더 가깝다. 그 예는 동양의 고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계륵, 곧 닭갈비 이야기’가 그렇다. 조조는 유비와 한중 땅을 놓고 싸우고 있었는데, 진격할지 퇴각할지 큰 고민에 빠졌다. 닭고기로 저녁 식사를 하던 조조는 그날 밤 진영의 암호를 ‘계륵’으로 정하도록 했다. 그 말에 조조의 심중이 담겨 있었다. 닭갈비는 먹을 만한 살은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깝고, 막상 먹자니 괜한 애를 써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어느 한쪽을 선택해도 결과는 바람직하지 못할 것 같다.

닭갈비를 붙잡고 있던 조조는 자신의 처지를 비춰보며 결코 유쾌할 수 없었으리라.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는 사자성어도 이런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난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딜레마를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딜레마 자체가 난제이기 때문에 해결책은 대개 궁여지책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딜레마 극복의 기본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상황에 오래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어느 쪽이든 빨리 결정해야 한다. 유쾌한 딜레마도 질질 끌면 오히려 불쾌해진다. 어떻게 빨리 결정할까. 완벽한 결정은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완벽한 선택을 바라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을 딜레마라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욕망이 오히려 없던 딜레마도 만들어낸다.

인간은 이분법을 즐겨 사용한다. 이분법은 매우 편리한 사고방식이지만 동시에 매우 제한적이다. 이분법을 구성하는 ‘가’와 ‘나’는 상호 배타적이지만, 동시에 ‘가와 나’는 함께 다른 모든 가능성을 배제한다. 딜레마는 이분법적 논리에 대한 인간의 아집을 골리는 기제로 작동한다. 여럿 가운데 하나보다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 법이다. 선택의 무게가 둘에 집중되어 집어 들기 힘들기 때문이다. 딜레마의 두 가지 구성 요소를 ‘뿔’로 은유하기도 하는데, 뿔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딜레마를 피하는 방법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이 말은 각 사례별로 딜레마의 이분법이 배제했을 가능성을 찾아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그 어느 것보다 어려운 딜레마에 처해 있다. ‘침울한 딜레마’ 또는 구체적으로 ‘상호침해적 딜레마’라고 할 수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우리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렇다. 우리는 방역의 강도를 올리면 민생 경제가 어려워지고, 경제를 고려하면 방역에 실패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한쪽의 영향이 다른 쪽에 해를 끼치는 특별한 딜레마이다. 이 경우에는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이 불가하다.

방역과 경제가 성난 황소의 두 뿔이라면, 지금의 상황은 두 뿔을 붙잡고 균형을 위해 애쓸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러한 노력의 주체는 방역 당국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다. 지금의 방역 정책은 각 개인의 실천이 없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노력의 효과가 불분명해 침울하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거대한 황소의 두 뿔을 붙들고 균형을 잡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우리가 지금 침울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은 지난 역사에서 인류가 ‘균형 잡힌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 지구 환경을 일방적으로 침탈하고, 인류의 삶과 다른 생명체의 삶 사이에 불균형이 축적되어온 결과 현재의 삶에서 균형의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인간이 딜레마를 만들어온 것이다. 오늘의 딜레마는 과거 균형 없는 삶의 결과이다.

따라서 딜레마 해소의 가능성 또한 과거를 얼마나 깊이 반성하는지, 그리고 반성의 결과를 구체적 실천의 과제로 삼고 얼마나 절실히 노력하는지에 달려 있다. 미래의 딜레마 예방 역시 과거의 불균형한 삶에 대한 속죄의 정도에 달려 있다.

이는 또 다른 일상의 성찰을 요구한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는 딜레마를 무수히 인식하면서도, 진정 균형을 잡고 살아야 했을 것에서는 딜레마가 잠재하는 상황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어떤 경우든 ‘인간은 딜레마를 만드는 동물’임을 깨닫게 된다. 사소한 딜레마는 만들어내고 중요한 딜레마의 가능성은 간과하면서 결국 삶을 엄중한 딜레마 속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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