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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손석우의 바람]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바람의 이름

등록 2020-11-22 16:23수정 2020-11-23 02:38

손석우 ㅣ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무지개는 몇 가지 색일까? 십중팔구 7가지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7가지일까? 사실 무지개 색은 연속적이라 딱히 몇 가지라고 구분할 수가 없다. 편의상 7가지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7색 무지개가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프리즘을 이용해 햇빛의 가시광선 스펙트럼을 연구하던 뉴턴(사과나무로 유명한)이 도레미파솔라시 7음계를 따라서 색을 나누면서 시작되었다. 뉴턴 이전 유럽에서는 주황색과 남색을 제외한 5색으로 무지개를 표현했다. 미국에서는 6색으로 무지개를 표현하기도 했다. 지금은 단색 로고로 쓰고 있는 애플사의 사과 로고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남색을 제외한 6가지 무지개 색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동양에서는 무지개를 5가지 색으로 생각했다. 흰색, 파란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으로 동서남북과 그 중심을 나타내는 오방색으로 표현했다. 오방색은 오행 사상과 연결하여 세상의 모든 영롱한 빛을 나타낸다. 동양철학에 기반한 오행은 나무를 파란색, 불을 빨간색, 흙을 노란색, 쇠를 흰색, 물을 검은색으로 표현했다. 물론 검은색과 흰색은 무지개색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상생과 상극을 표현하던 오행 사상에서는 이를 포함해서 철학적으로 무지개를 표현했다.

무지개를 표현하는 방식처럼 바람의 이름 또한 동서양이 매우 달랐다. 지금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기준으로 동풍, 서풍, 남풍, 북풍으로 바람을 구분한다. 그러나 우리말 이름은 사뭇 다르다. 4방위에 상응하는 우리말 이름으로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 등이 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바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봄철 동쪽에서 새로 부는 바람이라고 해서 샛바람, 여름철 남쪽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이라 해서 마파람, 가을 바다 위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하늬바람(하늬는 뱃사람들 용어로 서쪽을 의미한다고 한다), 겨울철 북쪽에서 불어오는 뒤바람 혹은 된바람. 북풍은 높은 데서 불어오는 바람이라고 해서 높바람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아쉽게도 최근에는 찾아볼 수 없다. “샛바람에 게 눈 감기듯” 혹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같은 속담에만 남아 있다.

바람의 강도를 표현하는 방식도 사뭇 달랐다. 서양에서는 바람의 강도를 숫자로 표현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이름을 사용했다. 기상청은 13단계로 구분되는 보퍼트 등급에 우리말 이름을 부여했는데 바람이 불지 않는 경우를 ‘고요’로 표현하고 바람이 강할수록 ‘실바람-남실바람-산들바람-건들바람-흔들바람-된바람-센바람-큰바람-큰센바람-노대바람-왕바람-싹쓸바람’이라 명명했다. 싹쓸바람은 육지의 모든 것이 쓸려갈 수 있는 강한 바람으로 태풍이 동반하는 강한 바람을 가리킨다. 부르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쉬운 이름이다.

그 외 많은 아름다운 이름들이 있다. 지역에 따라 혹은 계절에 따라 다른 이름들이 사용되기도 했다. 며칠 전까지도 불어오던 선선한 가을바람을 갈바람이라 불렀다. 특히 입추부터 입동까지 부는 서늘한 바람을 소슬바람이라 불렀다. 가을에 외롭고 소슬한 느낌을 주며 부는 소슬소슬한 바람. 국립국어원의 정의다. 여기서 소슬은 한자로 쓸쓸할 ‘소’와 거문고 ‘슬’에서 비롯된 것으로, 거문고 소리와 같이 쓸쓸함을 의미한다. 매우 서정적인 이름으로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바람의 이름이다. 때문에 노래 가사와 문학 작품에 자주 등장했다. 1980년대 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발표한 ‘사계’ 중 가을철 대목은 “찬바람 소슬바람 산 너머 부는 바람”으로 시작한다.

이제는 표준이 된 서양식 날씨 표기법에 비해 우리말 표현은 더욱 철학적이고 서정적이었다. 어쩌면 하늘의 색 그리고 부는 바람 하나하나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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