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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용석의 언어탐방] 백신: 맞기로 했으면 함께 맞아야 한다

등록 2020-11-03 14:12수정 2020-11-04 02:39

율라 비스는 그림의 배경에 박쥐가 날고 죽은 자들이 나룻배로 강을 건너고 저승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사냥개가 있는 상황이 “면역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림은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이 될 발목처럼 ‘누구든 완벽한 면역을 가질 수 없음’ 또한 은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면역을 얻기 위해 백신을 맞는다. 백신은 모두 함께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ㅣ 철학자

“아 참, 너 독감 백신 맞았니?” 한동안 적조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움에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받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통화를 마무리할 즈음 친구는 잊어버릴 뻔했던 것이 생각난 듯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아니.” 나는 덤덤히 답했다. “그런데 이 백신 맞아야 하는 거야, 맞지 말아야 하는 거야?” 나는 순간 멈칫했다. “너 맞으러 갈 거야?” 친구의 목소리가 높아진 걸 느꼈다. 약간의 조바심도 전해졌다. 그제야 내 직관은 작동했다. 사람들은 종종 하고 싶었던 말을 대화의 맨 마지막에 꺼낸다는 것, 그걸 상기했다.

‘하고 싶었던 말’은 언제 하든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다. 친구의 중요한 말에는 진지해져야 한다. “음…, 뭐…,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우린 나이도 있으니까 지금 몸 상태가 괜찮다면 독감 유행하기 전에 맞아서 예방하는 게 아무래도 낫겠지. 일단 내가 맞아보고 말해줄게.” 뇌 속의 신경세포를 초고속으로 돌려 임기응변했지만, 친구의 걱정에 비하면 초라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친구는 내가 먼저 맞아보겠다는 말에 피식 웃으며 “그냥 물어본 거야” 하며 전화를 끊었다.

친구와 통화한 뒤에도 주위 사람들이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 일이 있었다. 독감 예방접종에 대한 망설임이 우리 일상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맞아도 문제, 안 맞아도 문제이니, 사람들은 심란하다. 이렇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배송 과정에서 일어난 백신의 상온 노출 때문이었다. 곧 백신 관리의 문제가 두려움을 불러왔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독감 예방접종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가졌던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백신에 대해 평소에 무관심하거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더라도, 위험과 공포를 느끼면 즉각 거부 반응을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로 백신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때에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막상 코로나 백신이 나오면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까.

우리가 어렸을 때는 백신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냥 ‘예방주사’ 맞는다고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백신이란 말은 1980년대에 들어서 일상용어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적으로도 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의 바람과 함께 대형 제약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다양한 백신을 개발·생산해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유아기에 맞는 백신만 해도 거의 두자릿수에 이르게 되었다.

백신이란 용어는 질병, 병원, 치료, 예방처럼 한자에서 온 우리말 특유의 두 글자 형태로 간편화되면서 실용적 소통과 언어적 권위를 획득해갔다. 백신이 한자어에서 온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의학사에서 백신의 개발과 용어의 기원이 에드워드 제너의 업적이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제너는 소를 키우며 암소의 젖을 짜는 농부들이 우두에 걸려도 약한 증상을 보이며 오히려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으며,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사람에게 우두를 접종했다. 이는 18세기에 제너에 앞서 영국의 벤저민 제스티를 비롯해 독일과 덴마크 등지에서 낙농을 하는 농부들 사이에서는 이미 활용되던 요법이었다. 다만 제너는 1796년 사람의 팔에 생채기를 낸 뒤 우두를 앓는 사람의 병변에서 채취한 액체를 문지르면 우두 병원균이 옮은 사람에게도 천연두 예방 효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논문으로 발표했다. 백신(vaccine)이란 말은 라틴어로 우두 또는 ‘암소(vacca)의 두창’이라는 표현에서 가져왔다.

백신이란 말 자체가 인류가 발전시켜온 예방의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셈이다. 백신은 인간에게 특정 질병 혹은 병원체에 대한 후천성 면역을 부여하는 의약품이다. 의약품이기 때문에 당연히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나는 부작용이란 말을 꺼린다. 부수적이란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원래 목표로 하는 효과에 ‘함께 따라오는 작용’이라면 ‘동반작용’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원작용보다 동반작용은 더 작을 수도 있고 더 클 수도 있으며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쁜 것만 아니라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각 나라 정부 산하의 식약품 규제기관은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에 사용 허가를 내주기 전에 먼저 부작용을 철저히 파악하여 보고할 것을 엄격히 요구한다. 하지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의약품이 나올 당시에 존재하는 검사 수단을 갖고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문제다. 모든 부작용 또는 동반작용은 의약품이 나온 시점에서 미래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은 없다.

율라 비스는 <면역에 대하여>(On Immunity)라는 책의 표지에 루벤스의 그림을 차용했다. 테티스 여신이 어린 아킬레우스를 강에 담그는 그림이다. 테티스는 아들을 불사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 그의 한쪽 발목을 붙들고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스틱스강에 아기의 몸 전체를 거꾸로 담근다. 율라 비스는 그림의 배경에 박쥐가 날고 죽은 자들이 나룻배로 강을 건너고 저승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사냥개가 있는 상황이 “면역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임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림은 아킬레우스의 유일한 약점이 될 발목처럼 ‘누구든 완벽한 면역을 가질 수 없음’ 또한 은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면역을 얻기 위해 백신을 맞는다. 백신은 모두 함께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면역을 지니고 있을 경우 바이러스가 감염시킬 숙주를 찾지 못해서, 곧 숙주에서 숙주로 이동하기 어려워서 병원체의 전파가 차단되는 현상인 ‘집단면역'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백신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하려면 접종률이 높아야 한다. 독감 백신처럼 그 자체의 면역 효과가 떨어지는 백신의 경우는 접종률이 더욱 중요하다.

백신을 안 맞든가, 맞기로 했으면 함께 맞아야 한다. 이에 공동체 구성원의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 공공보건을 담당하는 기관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믿음의 연대를 할 수 있도록 정보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여러 해 전부터 주목하고 있는 ‘백신에 대한 망설임’(vaccine hesitancy) 현상을 잘 보아야 한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면 이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보건당국은 사람들을 먼저 설득하려 하지 말고 망설이는 사람들의 말을 ‘친구의 말처럼’ 경청해야 한다.

친구와 통화하고 이틀 뒤 백신을 맞으러 갔다. 접종 뒤 대합실에서 한 20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번 백신 맞아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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