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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리의 칼럼] 숟가락 / 김훈

등록 2020-10-26 04:59수정 2020-10-26 07:34

지난 9월3일 문화재청은 경주 황남동 고분의 6세기 신라 귀부인을 공개했다. 1500년 전의 흙 속에서 이 여성 유골은 온몸에 금은보화를 걸치고 있었다. 6세기의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 존망을 다투면서 가야의 소국들을 합쳐가고 있었다. 이 전란의 시대에도 신라 귀부인의 영화는 땅 밑에까지 찬란했다. 이 지체 높은 유골 옆에 쇠로 만든 밥솥과 음식을 담던 토기들이 함께 묻혀 있었으니, 이 ‘금’부인도 별수 없이 저승의 ‘밥 세끼’를 걱정했던 중생이었다.

이 신라 금부인은 백제 무령왕과 동시대를 살았다. 무령왕의 그 호화찬란한 무덤에서도 숟가락이 나왔다. 무령왕은 생시에 맛있는 것을 많이 먹었을 터인데 죽어서도 숟가락을 지니고 무덤에 들어갔다. 가야 실력자들의 무덤에서도 숟가락이 나온다. 이 숟가락들은 실력자들의 위상과 관련 없이 디자인의 기본 구도는 같다. 이 구도는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입과 밥 사이에서 자연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디자인은 인간 문명의 기본 표정이다. 생후 두돌 된 아이의 숟가락과 무령왕의 숟가락은 똑같다. 숟가락은 입-팔-밥 사이의 축선을 가동시킨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는 한국 젊은이들이 숟가락의 위상이 세습되는 현실을 한탄하고 저주하는 말인데, 1500년 전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숟가락을 한자로는 시(匙)라고 쓴다. 금시, 은시, 토시는 모두 동일한 원형을 갖는다. 인간은 이 원형을 이탈할 수 없다. 이 원형은 ‘공통시’(共通匙)이다. 코로나가 창궐해서 사람들이 밥 먹기 힘들어지니까, 세상의 모든 숟가락, 무덤 속의 숟가락과 그 원형으로서의 ‘공통시’가 내 마음에 떠오른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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