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우 ㅣ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바람은 왜 불까? 고대 그리스인들도 궁금해했던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심지어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상론>이라는 논문집을 내기도 했다. 물론 현대 기상학과 달리 4원소론에 근거해 기상 현상을 설명했지만, 기원전 340년께 4권으로 출판된 이 논문집은 기상학의 시초가 되었다.
바람은 왜 불까? 바람이 부는 가장 큰 이유는 적도가 따뜻하고 북극이 차갑기 때문이다. 저위도와 고위도 온도 차이가 곧 바람을 만들어 낸다. 바람은 특히 중위도 상층에서 강한데, 고도 10㎞ 전후에 존재하는 강한 바람을 제트기류라고 부른다.
제트기류가 발견된 것은 사실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제트기류의 존재 가능성이 처음 보고된 것은 1920년대다. 일본 기상학자가 후지산 상공에 강한 서풍(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 부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관측은 학계에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다. 이후 다수의 조종사들이 동쪽으로 비행할 때 바람이 비행기를 강하게 밀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보고했다. 이런 관측과 경험을 토대로 1939년 독일 기상학자에 의해 제트기류가 제안되었다. 쏘는 듯이 강한 바람이란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궁금해했던 것들이 20세기에 들어서야 관측되고 설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트기류를 처음 활용한 사람들은 군인이었다. 특히 일본군은 제트기류가 동쪽으로만 불고 겨울철에 강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대양을 횡단할 수 있는 풍선폭탄을 연구했다. 시한폭탄을 장착한 풍선이 고도 9~10㎞ 상공에서 제트기류를 따라 동쪽으로 날아간다면, 3~4일 만에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여기에 사용된 풍선은 매우 단순했다. 뽕나무 종이를 곤약풀로 연결해 지름 10m의 커다란 풍선을 만들고, 수소를 가득 채웠다. 수소는 폭발 위험이 크지만 그 어떤 기체보다도 가벼워 시한폭탄을 장착하고도 고도 10㎞까지 상승할 수 있었다. 간단한 고도계를 활용해 풍선의 고도가 낮아지면 무게추를 떨어뜨리고 너무 높아지면 수소를 버리는 방식으로 고도를 유지했다.
상상만 했던 풍선폭탄은 1944년 실전에 투입되었다. 미군의 공격에 대한 반격으로, 다급하게 대륙간 공격이 시도된 것이다. 풍선폭탄은 저렴했기 때문에 패전 직전의 궁핍함 속에서도 약 1만개가량이 제작되었다. 주로 여학생들이 체육관이나 학교 강당에서 풍선을 만들고 폭탄을 조립했다고 한다. 1944년 11월3일 ‘천황’의 생일에 맞춰 도쿄 인근 지바현부터 후쿠시마현 해안을 따라 폭탄이 띄워졌다. 이 공격은 1945년 3월까지 이어졌다.
놀랍게도 소수의 폭탄풍선이 실제 미국에 도착했다. 확인된 것은 3퍼센트 내외에 불과하지만 미국 서부에서 중부에 걸쳐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견되었고, 심지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도 발견되었다.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한다면 10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작년 10월에 캐나다 서부에서 당시 제작된 폭탄풍선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폭탄풍선의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곳에 떨어졌고 폭발로 이어진 경우도 많지 않았다. 일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풍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의 부주의 때문이었다.
풍선폭탄은 기괴한 시도였지만, 일본 본토 공격에 열중하던 미군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미군은 풍선폭탄에 생화학무기가 장착되었을 가능성을 우려했다. 페스트균이나 천연두균이 바다 건너 날아온다면 감당할 수 없는 큰 피해가 예상되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오늘날 제트기류는 민간항공기 운영에서 필수 요소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날아가는 시간이 돌아오는 시간보다 짧은 이유다. 하지만 대륙간 비행에 제트기류를 최초로 활용한 기구는 다름 아닌 폭탄이었다. 과학의 아이러니다.
오늘날 제트기류는 민간항공기 운영에서 필수 요소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날아가는 시간이 돌아오는 시간보다 짧은 이유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차 대전 당시 도쿄에 만들어진 전쟁 무기 실험 연구소였던 노보리토연구소의 옛 건물에 있는 메이지대학 자료관에는 풍선폭탄 모형이 전시돼 있다. 사진 정남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