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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같거나 다르거나] ‘보편증세’로부터 권력구조 개편을 / 금태섭

등록 2020-10-21 16:12수정 2020-10-22 02:37

사정기구의 개혁은 사정기구 그 자체보다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당위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 이념 대결이 아니라 오로지 권력을 향한 진영 대결만이 난무하는 이 난폭하고 무책임한 시대를 넘어 기본소득을 객관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시대를 위해서라도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태

금태섭 ㅣ 정치인

사모펀드를 이용해서 다수의 피해자를 낳고 금융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기꾼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정당한 발언권을 얻은 것처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입장문을 통해서 고위공직자에게 뇌물을 줬다고 하고 검찰에 로비를 했다고 말합니다. 수천억, 수조원의 피해를 입힌 사람이 검찰개혁 운운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우리 사회가 우스운 꼴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합니다. 위로는 법무부 장관부터 아래로는 사기꾼까지 ‘검찰개혁’을 어떤 잘못도 정당화하는 절대반지 같은 것으로 여기나 봅니다. 아무튼 여당이든 야당이든, 검사든 관료든, 이번 기회에 범죄자를 비호한 공직자들의 잘못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김 전 의원께서는 어지러워진 사회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검찰이나 경찰이 정권에 장악되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셨습니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있는 구조, 검찰이나 심지어 사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드는 행태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그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개헌이지요.

우리 헌법은 기본권 조항에도 고쳐야 할 내용이 적지 않지만, 권력구조 부분은 특히 손대야 할 곳이 많습니다. 분단 상황을 빌미로 터무니없이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의회의 권한이 확대되고 강화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산에 관한 권한이 유명무실합니다. 행정부가 짜 온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다투는 시늉을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심지어 기획재정부는 삭감할 부분을 미리 마련해서 국회가 ‘실적’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의원들은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산 편성을 이런 식으로 하니 결산이 수박 겉 핥기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사에 관한 권한도 강화해야 합니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임명직의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합의제 기구에서 인준을 받는 절차를 거치게 해야 임기제 공무원마저 마음대로 갈아치우려 드는 관행을 없앨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라는 건곤일척의 승부에서 이기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는 폐해는 권한의 분산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것처럼 개헌은 쉽지 않습니다. 보수정부에서나 진보정부에서나 여러 차례 헌법 개정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그때그때 정치적 상황에 따라 현상 유지를 원하는 세력이 반대했습니다. 설혹 개헌 자체에는 뜻이 모아지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너무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개정안을 만들기가 극도로 어렵습니다. 1987년에 개헌이 가능했던 것은, 그 전에 있었던 5공화국 헌법이 너무나 문제가 많아서 고칠 점이 분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주요 대권주자들이 합의를 이루지 않을 수 없는 여론의 압력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는 실질적인 논의가 없었고 간혹 ‘원포인트 개헌’ 등 임시방편이 제안되었을 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국민들 사이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바꿔보자는 움직임이 생기려면 단순히 말로 하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국회가 먼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국회 무용론이 없어지고 권력 분산의 동력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일하는 국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도모하는 국회를 만든 다음에 국민들께 제대로 된 권한을 달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죠.

그렇게 추진할 수 있는 변화 중 하나로 저는 보편증세를 생각해봤습니다. 얼마 전 <장제우의 세금수업>이란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보수정권이나 진보정권이나 증세를 금기시해왔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의미 없는 구호를 내세우거나 ‘부자증세’와 같이 실질적인 변화는 가져올 수 없으면서 갈등만을 만드는 얘기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소득세를 내지 않는 국민의 비율이 40%에 이르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제대로 된 복지나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장제우의 말처럼 많은 세금을 내는 국민은 정치를 대하는 눈높이가 높아지고 야무지게 정치를 감시하게 됩니다. 우리 정치와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정치적으로 불리하고 표를 깎아먹는 일로 여겨질 겁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지 않고 변화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마침 정의당 김종철 대표도 저소득층도 증세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 논의를 해보면 어떨까요? 사기꾼들의 행태를 보면서 분노하는 일도 물론 필요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잘살 수 있도록 해드리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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