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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리의 칼럼] 올(All)불 / 김훈

등록 2020-10-12 04:59수정 2020-10-12 08:00

신약성서에서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은 예수의 적대 세력이었다. 바리새인들이 간음의 현장에서 체포된 여자를 예수에게 끌고 와서 처분을 물었다. 구경꾼들이 몰려왔다. 예수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판결했더니, 다들 달아났다.(요한복음 8장 1~11절) ‘나이 많은 자들부터’ 달아났다고 복음서 기자는 썼다. 이것은 놀라운 문장이다. 무심한 듯한 한 줄로 인간 세상의 치부를 벼락치듯 때린다. 나이가 많으면 죄업도 무겁다.

바리새인들은 ‘내로남불’을 만들려고 왔다가 ‘내불남불’이 되고 말았다. 군중도 모두 달아났으니, 이 재판의 결과는 ‘올(all)불’이다.

내로남불은 언제나 인기 높은 불륜 드라마의 상투적 갈등 구조인데, 시청률이 높지 않은 정치판에서도 정쟁의 단골 메뉴다. 내불이 내로가 되는 까닭은 그 불륜이 나에게 간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간절한 것은 필연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이것은 정치적 치정이나 비리, 부패, 탈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불륜극에서나 정치판에서나 내로남불은 명확한 시비가 가려지지 않는다. 내로남불의 싸움은 수세와 공세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서로의 ‘불’을 공격한다. 이렇게 싸우다보면, 내로남불의 실체는 내불남불임이 드러나는데, 어떤 드라마나 정치 현장에서는 내불남불을 내로남로로 결론짓는다. 비김으로써 위장하는 것이다. 이러니, 내로남불이나 내불남불이나 내로남로나 별 차이 없고 결국은 올불이 된다. 그리고 올불의 세월이 쌓이면, 로와 불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인간은 세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예수 시대의 군중은 달아났지만, 지금 사람들은 달아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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