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 ㅣ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작은 일 때문에 큰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의 잘 알려진 속담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작은 걸 노리다가 큰 걸 망치는 것도 어리석지만, 한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이 종류만 다르지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를 만드는 것 또한 우매하다는 뜻도 담겨 있는 것이다. 가령 더러운 걸 닦는다고 입은 옷으로 문지르는 건 누구의 눈에도 해결책이 아니다. 더러운 채로 다니는 걸 원하지 않는 이상.
특히 애초 문제가 된 것과 동일한 영역의 문제를 곧바로 야기하는 걸 해결책이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다. 여기에 정확히 해당되는 것이 작금의 재생가능에너지 정책이다. 우리 사회가 애초에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당위는 너무도 당연히 기후변화이다. 탄소배출의 원흉인 화석연료로부터 탈피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이 시작됐음에도,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효과가 발생하는 조치들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정부는 물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탈원전 기조의 일환으로 석탄발전소 7기와 더불어 국외 사업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찌 보면 그보다 더 황당하게 모순적인 태양광발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태양광발전이 일으키는 산림훼손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태양광발전으로 훼손된 산림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17배로 지난 17년 동안 허가된 건수의 3.8배에 이른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밑바탕에 깔린 논리이다. “태양광발전을 하려면 자연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등식 말이다.
태양전지 패널을 설치하려면 물론 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땅은 당연히 이미 인공적으로 개발된 땅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유는 자명하다. 숲이나 습지 등 자연서식지는 이미 탄소 저장·흡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넓디넓은 도시의 포장된 지역과 건물의 옥상, 벽면, 도로, 주차장 등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한 마디로 ‘놀고 있는’ 땅이다. 이건 탄소 하나만 봤을 때의 얘기이다. 물과 물질의 순환 등 각종 생태계 서비스 및 생물의 서식지 제공 등까지 들먹이면 게임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혹자는 주장한다. 그것이야말로 사실무근이며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센트럴밸리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개발지역, 고염분 농지, 오염지역, 저수지 등 농지와 자연서식지를 제외한 곳에만 패널을 설치해도 충분한 전기를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전체의 2025년 발전량을 태양열발전(CSP)으로 2배, 광전지로 무려 13배나 초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도 하기 나름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지난 약 10년 동안 태양전지의 수가 매년 50% 증가했다. 가능한 모든 지붕, 벽면, 옥상을 활용한 결과이다. 2030년까지 도시 전체 전기량의 80%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덕분에 암스테르담 시내에선 벽면이 온통 태양광 패널로 덮인 건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어차피 아무 역할도 않는 인공 표면에 응당 부여해야 할 역할이다.
태양전지 기와나 지붕 소재도 다수 출시된 마당에 도시 인프라에 적극적으로 설치하지 않으면서, 기후변화에 가장 중요한 산림을 훼손하며 재생가능에너지를 생산하겠다는 발상은 모순의 극치이다. 새만금과 시화호의 수상태양광 등 수면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도 수생생태계를 해하는 방식으로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은 이미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지금은 우리 인간만 잘하면 되는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