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희 ㅣ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초등학교 때 꿈이 줄곧 약사였다. 장래희망을 얘기하면 어른들은 “왜 의사가 아니고 약사가 되고 싶냐”고 꼭 물었다. 의사? 1980년대 경북의 작은 읍내에서 의사를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병원이 두군데 있긴 했지만, 전 국민 의료보험 시행 전이라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 못했다. 이웃집의 직장 의료보험증을 빌려 동갑내기 친구 이름으로 진료를 받은 적이 두어번 있을 뿐이다. 약국은 가깝고 병원은 멀었으니 의사를 롤 모델로 삼을 수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 병원이 아닌 ‘의사 선생님’ 집으로 찾아가 주사를 맞기도 했다. 불로 소독한 유리 주사기가 유난히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한참 뒤에 알았지만, 무면허 불법 의료행위였다. 보건소에 치과가 있었는데 의사가 공석일 때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치과가 아닌 곳에서 치과 진료가 이뤄지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발치부터 보철까지 다 가능했다. 역시 무면허 불법 의료행위였고,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산부인과가 없었으니 대부분 가정 출산을 했고, 보건소 간호사가 집으로 찾아와 산부인과 의사를 대신했다. 고유의 업무였는지, 알음알음 서비스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2020년 현재, 읍내에는 의원이 10여곳으로 늘었다. 가정의학과, 외과, 치과, 안과까지 있고,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들로 붐빈다. 5일장이 서는 날은 대기줄이 더 길어진다. 과거에 견줘 병원 접근성은 확실히 나아졌다. 건강보험을 믿고 병원 쇼핑을 다니는 어르신들을 걱정할 정도다.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읍내에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없다. 응급실도 없다. 입원실이 있던 병원은 장례식장이 있는 요양병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임산부와 응급환자는 차로 40분을 달려 인근 중소도시까지 나가야 한다. 수십년이 흐르는 사이 의료 접근성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공공의료가 감당해야 할 몫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최근 전공의 집단휴진으로 응급실을 찾아 헤맨 수도권 환자의 사례가 보도되었다. 집에서 차로 40분이나 걸리는 응급실로 간 상황을 크게 우려하며 언론에 소개했지만, 많은 의료 취약 지역에서는 일상이다. 뇌졸중 등 응급질환의 경우 서울 동남권과 강원 영월군 간의 사망률 차이가 갑절이 넘는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서울·수도권과 지역별 의사 수 격차를 보면 당연한 현실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서울은 3.1명인데 경북은 1.4명이다. 서울 종로, 강남, 중구의 평균 의사 수는 10.57명으로 경북에서 의사 수가 가장 적은 군위, 봉화, 영양의 0.75명에 견줘 무려 14배가 많다.
생업을 멈추고 집단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편이다. 오죽하면 저렇게까지 할까 싶어 그 이유를 찾아보고 마음으로 연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전공의 집단휴진은 좀처럼 수긍하기 어려웠다. 보름 동안의 진통 끝에 의료 현장 복귀를 조건으로 여당과 의사단체가 합의안을 내놓았지만 미덥지 못하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방안을 원점에서 다시 논의한다는데, 이번에도 시간만 끌다 흐지부지될까 우려된다.
공공의료 인력 확충이라는 묵은 과제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적어도 불이익이 아니라 불의에 분노한 집단행동이었다면, 앞으로 진정성 있는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시민들이 수긍할 만한 결론을 내야 한다.
덧붙이는 이야기 하나, 앞서 언급한 읍내에 1980년대엔 변호사가 한명도 없었다. 법원 지원과 검찰 지청은 있었지만, 이른바 ‘무변촌’이었다. 2020년 현재, 그때와 견줘 인구는 3분의 1로 줄었지만, 법률사무소는 네곳으로 늘었다. 그 사이 변화라면 로스쿨 도입으로 해마다 변호사 수가 획기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