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은 과연 오늘날 코로나 위기, 기후 위기, 불평등 위기, 삶의 터전 위기가 겹친 다중위기 시대, 대전환의 기회를 잘 살릴 수 있을까?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겨냥한 이 기획에는 코로나 방역 성공의 과도한 자만감이 묻어 있다. 뉴딜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화석연료 의존 성장제일주의라는 올드한 관성이 짙게 배어 있다. 진작에 청와대가 무력화되고 사회경제정책 사령탑을 장악한 기획재정부의 냄새가 심하게 풍겨난다.
이병천 ㅣ 강원대 명예교수·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
역대 가장 긴 장마가 끝나자마자 폭염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사랑제일교회발 집단감염의 재확산으로 코로나19 대규모 재유행의 초기 단계라는 진단이 날아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됐으나 3단계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수도권 병상 부족 문제도 우려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다시 갈림길이다. 하지만 한걸음 더 들어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코로나 방역 전선, 기후위기 대응 전선은 물론 부동산발 여권 지지율 폭락에서 보듯 사회경제 개혁 전선에도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다수 대중을 불안정 노동, 주거 불안, 삶의 불안으로 내몰고 자산 특권층과 세습 재벌 대기업을 살찌우는 부조리한 희생의 체제, 불로소득이 주도하고 세계 최고 수준 가계부채에 기반을 둔 불공정하고 불안한 거품 성장 체제, 불평등·기후위기와 저성장이 맞물려 돌아가는 3자 악순환 체제는 언제야 극복할 수 있을까. 총선 넉달 만에 정부 여당 지지율이 뒤집혔다. 그야말로 다이내믹한 코리아다.
이처럼 변화된 상황이라면 포스트코로나를 내다본 여러 담론과 기획들도 생각을 고쳐먹어야 맞다. 무엇보다 정부의 한국판 뉴딜이 다시 자기 발밑을 내려다봐야 할 때다.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한국판 뉴딜을 띄웠을까.
먼저, 한국판 뉴딜은 코로나19에 따른 구조적 변화의 특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세 가지가 거론된다. ①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속도가 국가의 산업·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 ② 저탄소·친환경의 그린 경제로의 전환이 삶의 질 개선과 함께 일자리 및 신산업 창출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③ 경제사회구조 전환과 노동시장 재편이 실업 및 양극화 심화 요인이 된다는 것. 그래서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도약하는 대전환 기획이 한국판 뉴딜이라는 것이다. 1번에 국가경쟁력 증강과 선도형 경제를 위한 디지털 뉴딜이 자리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자.
둘째, 한국판 뉴딜에는 추격국가에서 포스트코로나 시대 ‘선도국가 도약을 위한 국가발전전략’,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이라는 엄청난 무게가 실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설계’라는 말까지 했다. 왜 굳이 뉴딜을 불러냈을까. 기획재정부 문서는 대공황기 미국의 뉴딜정책, 즉 구제, 회복, 개혁의 세 축(3R)을 거론하면서 바로 한국판 뉴딜이 미국 뉴딜정책에 버금가는 선도국가로의 발전전략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처럼 선도국가나 뉴딜이라는 포장이 참신한가? 전혀 아니다. 다름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창조경제전략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세계 경제의 선도국가로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라 말했었다. 선도국가뿐만 아니라 한국판 뉴딜도 박근혜, 이명박 정부 때 모두 다 나왔던 말이다. 한국판 뉴딜이 “선도형 경제로 바꿔나가는 지속가능한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문 대통령의 진술, 한국판 뉴딜 최종판(7월14일)에 디지털화가 국가경쟁력의 핵심요소이며 디지털 뉴딜을 통해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나아간다는 진술에는 ‘올드’한 냄새가 짙게 난다. 코로나 방역 성공을 기회로 삼아 기재부가 주도하는 성장지향 기획으로서 한국판 뉴딜과 선도국가론이 만들어진 셈이다.
셋째, 경과를 살펴봐야 한다. 한국판 뉴딜은 결과적으로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 고용사회안전망 강화의 세 축으로 구성되게 됐지만 기재부 원안에는 그린 뉴딜이 없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코로나 위기 및 기후 위기 시대와 마주해 대한민국 기재부가 머리를 어떻게 굴리고 있는지 알고도 남는다. 그린 뉴딜은 거의 전적으로 문 대통령의 문제 제기와 지시에 의해 끼어들어 갔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제수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리하여 2025년까지 국비 114조원(민간과 지자체 포함해 160조원)을 투자해 190만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5개년 계획이 1~2개월의 짧은 기간에 급조되어 우리 앞에 던져졌다. 미래 ‘100년의 설계’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한국판 뉴딜은 과연 오늘날 코로나 위기, 기후 위기, 불평등 위기, 삶의 터전 위기가 겹친 다중위기 시대, 대전환의 기회를 잘 살릴 수 있을까?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겨냥한 이 기획에는 코로나 방역 성공의 과도한 자만감이 묻어 있다. 뉴딜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음에도 화석연료 의존 성장제일주의라는 올드한 관성이 짙게 배어 있다. 진작에 청와대가 무력화되고 사회경제정책 사령탑을 장악한 기재부의 냄새가 심하게 풍겨난다.
■ 한국판 뉴딜에는 공공의료체계 강화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케이(K)-방역은 성공했어도 케이-의료는 거의 실패했으며 2차 유행에 대비해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진지한 진단이 있어 왔다. 이 진단은 무시되었다. 한국판 뉴딜에는 디지털 뉴딜의 일환으로 비대면 의료산업(원격의료) 육성사업이 도드라져 있을 뿐이다.
■ 한국판 뉴딜로 과연 기후회복력 있는 발전 경로가 가능할까. 그린 뉴딜이 한국판 뉴딜에 들어온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명실상부한 그린 뉴딜이 되려면 ‘1.5도 목표’(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억제)를 위해 10년 내 탄소배출량을 절반으로 감축하고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과 삶의 방식, 사회적 가치 전환을 실현하는 비전과 구체적 전략을 가져야 한다. 좌초자산과 해당 노동자, 지역, 공동체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 전환적 뉴딜이라면 이런 실질적 그린 뉴딜을 1번으로 올려야 한다.
■ 디지털화는 양날의 칼이다. 한국판 뉴딜에는 디지털화의 위험(실업과 불안정노동, 정보인권 침해, 환경 파괴 등)에 대한 인식이 매우 미약하며 디지털 기술의 밝은 면만 보는 첨단기술 숭배주의가 뚜렷하다. 디지털 뉴딜에서 관민협력 체제, 정부·대기업·금융의 삼각동맹 체제는 디지털화의 진보적 가능성을 가로막고, 필시 대기업과 금융자산층들이 이익은 사유화하고 비용과 위험은 사회화할 공산이 크다. 또한 디지털화의 일방적 강행은 한국 경제의 고질적 이중구조 문제를 재생산할 것이다.
사정이 위와 같다고 할 때 한국판 뉴딜은 지속가능할까. 한국은 미국 따라하기를 잘하는 걸로 아는데 한국판 뉴딜과 그린 뉴딜은 미국판보다 한참 하수다. 전환적 뉴딜과 생태복지 국가로 가는 동력은 아래로부터 시민사회운동에서 나와야 할 판이다. 하지만 운동에도 어려움이 있다. 불안·불확실성의 시대가 대중들에게 각자도생과 성장지향 성향을 강화시켰다는 점, 그린 뉴딜은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 해소,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갖고 있지만 그 선조합은 전환정치의 과제이고 전환의 계곡을 넘어가야 한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된다. 하여튼 제발 더 늦기 전에 생각을 고쳐먹고 한국판 뉴딜의 새판을 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