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주거의 권리에 대한 나의 소견은 서울에서 자라면서 목격한 무허가 주택 철거 현장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먹고살려는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들었고 집은 없었으므로 무허가 주택의 대단지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현상이었다. 이 단지를 행정행위로 때려 부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그 자리가 국유지이거나 사유지라는 것이었다. 국토는 모두 국유지이거나 사유지이기 때문에 철거민들은 땅 위에 엉덩이를 붙일 자리가 없었고, 인간의 생존은 ‘허가’의 대상이었다.
철거 현장은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쫓겨나는 사람들은 소주병에 분뇨를 담아서 던지며 저항했다. 저녁에는 가루가 되어버린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에서 울었다. 이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정책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변두리에 모여서 다시 마을을 이루면 그 동네를 또 부수었다.
지금, 전월세 값에 짓눌린 인간고의 바탕은 그때의 철거 현장의 기본구도와 다르지 않다. 철거 현장에서는 도끼와 망치로 집을 부수어서 사람들을 추방했지만, 지금은 시장의 질서 속에서 가격의 조정능력이 추방의 기능을 수행한다. 집 없는 사람들은 다주택자나 임대사업자에게 돈을 내고 그 공간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데, 이 돈은 집 많은 사람들의 재산 형성에 기여하고, 집 없는 사람들의 작은 재산을 증발시킨다. 전월세 값의 문제는 부동산 수익의 문제나 시장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존망의 문제이고 추방과 저항의 문제이다. 시장은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의 생각이 철거 현장의 충격에 가위눌린 것이라 해도, 나는 나의 거칠고 낙후된 소견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김훈 ㅣ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