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연 ㅣ 사회정책부장
지난주 정부의 ‘그린뉴딜’ 계획 발표를 두고, ‘무늬만 그린뉴딜’ ‘회색뉴딜’이라는 환경단체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그린뉴딜은 2025년까지 진행될 정부의 ‘한국판 뉴딜’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사업비(73조4천억원)가 투입되는 분야다. 그동안 정부에 ‘그린뉴딜’을 촉구해온 환경단체들이 외려 정부 발표에 반발한 이유는 뭘까.
그린뉴딜의 간판 사업은 노후 공공건물을 대상으로 한 그린리모델링과 전기·수소차 보급 확대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사업들로 일자리 65만9천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환경단체 쪽에선 알맹이가 빠졌다고 지적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과감한 목표 제시도,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내놓지 못한 채 기존 친환경 사업의 나열에 그쳤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는 한국 정부가 유독 기후위기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누적된 불만이 깔려 있다. 1997년 선진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교토의정서 체제를 넘어 2015년에는 전세계 195개국이 합의한 파리협정이 채택됐다. 2100년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보다 2도를 넘지 않아야 하고 가급적 1.5도 이하가 되도록,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현재까지 오른 약 1도의 영향만으로도 해수면은 상승하고 기상이변은 잦아지고 있다.
2018년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1.5도 특별보고서’는 그 목표를 좀 더 선명하게 제시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을 줄이려면 온난화를 1.5도로 억제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2050년 순배출 증가량 제로(net zero)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넷제로를 향한 각국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유럽연합(EU)은 2050년 넷제로를 목표로 2030년까지 매년 1천억유로 이상을 투자하는 ‘그린 딜’을 추진 중이고, 일부 국가는 넷제로의 입법화에도 나서고 있다. 이에 견주면 한국은 ‘거북이걸음’이다. 원래도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정점을 지나 배출량 감소를 보이는 선진국들과 달리, 배출량 증가세를 이어가던 처지였다.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치 대비 37% 감축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유럽 기후 분석 전문기관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감축률 목표를 두배 이상 올리라”고 주문한다. 각국의 대응 자세를 평가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0’ 보고서에서도 우리는 61개국 중 58위로 최하위권이다.
정부는 연말까지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낸다는 계획이지만 미덥지가 않다. 올해 초 환경부는 5가지 권고안을 공개했지만 이 중에는 ‘1.5도 목표’에 다다를 수 있는 안은 없었다. “광범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런 움직임도 잘 안 보인다. 정치권이나 관료집단은 기후 문제를 장기 과제로만 미뤄두는 분위기인데다, 사회적 공론장에서 치열한 토론이 열리지도 않는다. 환경전문변호사 출신의 이소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300명의 의원들 중 단 10명만이 기후 문제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을 것”이라며 “(한국 사회에서) 기후위기는 여전히 주류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는 지난 4월 감염병과 기후변화 위기 간의 유사성으로, 전문가들의 줄기찬 경고에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는 점,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사회·경제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산업을 일찌감치 키워내고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시점까지 정하고 있는 선진국들과 달리, 기후 대응이 개개인의 윤리적 실천 따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한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 지적이다. 그나마 감염병은 주기적으로 닥칠 때마다 조금씩 다음을 준비하지만, 기후위기는 미래세대가 받을 타격이 더 크다.
집권여당이 이를 더 이상 훗날의 과제로만 여겨선 안되는 이유다.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 정책에 있다. 온실가스의 90%는 에너지 부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탄소 기반의 사회·경제 구조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 계획을 짜야 한다. 산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올해 코로나19로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은 약 7% 감소할 전망이다. 1.5도를 맞추려면 10년 내 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데, 이는 코로나19와 같은 충격이 매년 닥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절감 노력을 필요로 한다. 갈길이 멀지만, 미룰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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