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하나의 주제를 놓고 이렇게 여러 언론이 동시에 팩트체크를 시도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인 것 같다. 전통 미디어의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아직은 아니다’라는 증거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아쉬움도 있었다. 기사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수세적이고 차별금지법의 의미를 애써 축소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홍성수 ㅣ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지난 6월3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2006년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2007년 법무부 법안이 발의된 뒤에도 여러 차례 법안이 발의된 바 있으나 이번만큼 열기가 뜨거운 적은 없었다. 인권위는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을 기세고 각계각층에서 지지 선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종교계 분위기도 좋다. 예전에는 대부분이 차별금지법 반대인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일부의 극단적 주장 같은 느낌이다. 반대쪽이 점점 고립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입법 의지를 내비치는 의원이 늘고 있다고 하고, 미래통합당까지 입법 필요성을 언급했다. 인권위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찬성 의견이 각각 88.5%, 87.7%로 나왔다는 것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지난 2주 동안 거의 모든 언론이 차별금지법을 진지하게 다뤘다. 유튜브나 포털에 차별금지법을 키워드로 넣어보면 ‘차별금지법은 동성애 반대 처벌법이다’, ‘설교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면 처벌받는다’,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준다’, ‘개신교를 억압하는 저격 법안이다’, ‘범죄자를 비판하면 고소당한다’ 등 허무맹랑한 가짜뉴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요 신문과 방송이 작심하고 하나하나 검증했고 허위임을 밝혀낸 것이다. 아마 하나의 주제를 놓고 이렇게 여러 언론이 동시에 팩트체크를 시도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인 것 같다. 전통 미디어의 시대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아직은 아니다’라는 증거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아쉬움도 있었다. 기사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수세적이고 차별금지법의 의미를 애써 축소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물론 그동안 가짜뉴스를 동원한 반대쪽 공세가 너무 거셌기 때문에 일단 수비에 주력하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입법에 탄력을 받으려면 차별금지법의 긍정적인 면모 또한 충분히 드러나야 한다. 평등이 보장되는 세상이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더 역동적이고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며, 궁극적으로 개별 기업의 경영이나 학교의 발전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풍부하게 보여줌으로써 시민들이 차별금지법이 있는 세상을 기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차별행위를 ‘소극적’으로 금지할 필요성이 평등에 대한 ‘적극적’ 지향에 대한 열망으로 발전해나갈 때 차별금지법에 대한 공감대가 더 넓고 크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입법 과정에서 가짜뉴스에 가려져 있던 복잡한 쟁점들이 하나둘 드러날 텐데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이제 차별금지법이 고용, 재화·용역의 이용과 공급, 교육, 행정서비스의 영역에 적용되는 것이며 설교를 규제하거나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알려졌다. 그런데 한국의 종교기관은 각종 사회복지시설이나 학교를 운영하며 수많은 고용을 하고 교육을 제공해왔다. 차별금지법과 종교가 만나는 것은 설교와 같은 고유한 종교행위가 아니라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가 실제로 맞닥뜨려야 할 문제는, 종교계 사회복지시설에서 노동자를 채용할 때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 있는가, 종교계 학교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학생을 차별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등의 쟁점들이다. 서비스 영역에서의 차별 금지 문제도 간단치 않다. 카페에서 손님의 연령을 제한하는 것, 이른바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음식점에서 코로나 감염 위험이 있다며 중국인의 출입을 금지하거나, 난민 유입에 반대한다며 난민에게는 물품 판매를 거부하는 행위는 허용되어야 할까?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논점들이다.
사실 저열한 가짜뉴스에 대한 팩트체크는 법조문만 꼼꼼히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보면 차별금지법을 둘러싸고 종교와 세속사회, 영업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 사학의 자유와 교육권 등이 서로 갈등하고 교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극적’인 팩트체크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까지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국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시작될 때쯤 ‘차별금지법 보도 시즌2’도 본격적으로 막이 오를 것이다. 한국 언론이 또 한 번 그 존재 가치를 과시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