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ㅣ산업부장
1930년대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행정부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뉴딜’(New Deal)엔 신화가 갖춰야 할 요소가 풍부하다. 대통령직 4선에 성공한 영웅이 등장하고 대공황을 이겨낸 서사가 존재하며 사회적 대타협과 미국 리버럴 30년 집권의 밑돌을 깔았다는 진한 여운까지 남긴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나라, 특히 우리나라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뉴딜을 거듭 무대로 소환하는 배경이다.
정치적 반대파의 불편한 속내는 잠시 제쳐놓는다 쳐도, 뉴딜에 쏟아지는 찬사는 분명 과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뉴딜은 ‘1930년대’라는 시간 축과 결코 떼어낼 수 없다. 1920년대를 몰아친 자본주의의 광폭함에 쓰러졌던 사람들은 “함께 싸웠던”(1차 세계대전) 1910년대의 기억을 불러내며 강한(큰) 정부를 열망했다. 뉴딜의 핵심 실무자들이 전시경제 기간의 베테랑이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자연스레 군사주의적 은유가 넘쳐났다. “우리는 공동규율이라는 선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잘 훈련된 충성스러운 군대처럼 전진해야” “위대한 군대와도 같은 우리 국민을 지도하는 역할”…. 1933년 봄 루스벨트 대통령 취임 연설엔 이런 문구가 난무했다.
적극적 재정정책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있지만, 정작 약발이 셌던 건 외려 통화정책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본위제 중지를 일방 선언했다. 국제통화체제를 뒤흔들어버린, 신흥 패권국의 노골적인 ‘이웃 굶겨죽이기’(인근 궁핍화) 통화절하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대타협이란 신화도 한꺼풀만 벗겨내면 ‘백인에겐 평등을, 흑인에겐 차별을’ 외쳤던 남부 지역주의 정당인 민주당의 전국 정당 프로젝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선도형·저탄소 경제와 포용 사회를 축으로 삼은 ‘한국판 뉴딜’을 국민보고대회라는 형식을 빌려 발표했다. 2025년까지 국고 114조원을 포함한 160조원을 투입해 19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게 뼈대다.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엔 루스벨트 뉴딜의 발자국이 뚜렷했다. 1930년대 뉴딜의 ‘구제·회복·개혁’의 열쇳말은 2020년 한국에서 ‘버티기·일어서기·개혁’으로 재탄생했다.
애초 루스벨트 대통령의 임기 첫 100일 신경제 프로젝트였던 뉴딜이 임기 2년도 채 남기지 않은 정부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약속”이자 “대한민국 대전환 선언”의 이름표가 된 건 어색하기 그지없는 일이나, 일단 넘어가자. 원작을 내세워 리메이크 작품의 시시비비를 가리려 드는 일도 옳지 않다. 루스벨트의 뉴딜 자체가 정교하게 설계된 완성품이 아니었듯이, 시대 상황에 맞게 뉴딜의 성과와 교훈은 얼마든지 참고할 만해서다.
다만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선 정책의 방향성과 목표, 짜임새에 의구심을 던질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190만개 일자리 창출 목표는 정부 스스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숫자다.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일자리 대체 효과가 적지 않은 탓이다. 이뿐이 아니다. 국고 114조원 가운데 세부항목 기준으로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분야는 5세대(5G)·인공지능 융합 확산 분야다. 고용안전망 강화에 쓰이는 재원에 버금가는 15조원 가까운 나랏돈이 투입된다. 주로 자율주행차 기술개발에 쓰인다는데 사실상 민간기업의 투자금을 정부가 대신 내주는 꼴이다.
뉴딜은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그럼에도 뉴딜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를 단 한가지만 꼽으라면,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결국 모든 경제주체들의 기대심리에 ‘체계적 변화’, 곧 신뢰를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누구나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을 수 있다는, 결국엔 모두가 혜택을 입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정부가 심어줬다는 얘기다. ‘딜’이란 이름값에 온전히 걸맞은 경험이다.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는다고, 재벌 총수가 손수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딜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신뢰의 싹이 정책 자체에서 움틀 때만 가능한 일이다.
뉴딜이란 단어는 원래 카드게임에서 허세 부리기 행동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에서 나왔다. 단 ‘대담하게, 성공한’이라는 수식어가 반드시 붙는 행동이다. 대통령은 왜 뉴딜이란 이름표를 고집했을까. 정말 궁금하다. 대담하고 성공적인 딜이 없다면 한국판 뉴딜은 나랏돈 퍼주는 허세 부리기로 그칠 공산이 크다. 뉴딜이 아니라 노딜(No De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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