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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용석의 언어탐방] 바이러스: 볼 수 없는 존재에 겸손할지니

등록 2020-07-14 18:02수정 2020-11-03 14:21

바이러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확실히 분류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인간에게만 정체불명이다. 인간이 생물과 광물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는 ‘엔(n)개의 정체불명 존재’들이 있다. 바이러스는 오히려 물질과 생명이 별개가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 연속선상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교양과목 목록 가운데서 이범선 선생님의 ‘대학국어’ 과목이 눈에 빨려 들어왔다. 오, ‘학 마을 사람들’과 ‘오발탄’의 작가 아닌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소설 제목이 떠올랐다. 바로 수강 신청했다. 선생님은 살집이라곤 전혀 없이 목관악기의 표면처럼 단단하게 마른 얼굴이었다. 작가의 얼굴은 다듬고 또 다듬어서 단단한 씨앗 같은 의미만 남은 언어, 인고의 시간을 거쳐 조탁한 삶의 언어 그 자체 같았다. 강의에 철저하셔서 막간 여담에도 지혜를 한술씩 담아주시곤 했다. 그런 선생님이 어느 날 ‘말의 맛’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이 세상 여러 나라 말 가운데는 대상을 묘사하는 데에 꼭 그 말로 해야만 제맛이 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노을’은 이 세상 어느 나라 말도 따라올 수 없는 맛이 있어요.” 나는 단박에 동의했다. “여기엔 언어의 민족주의는 없는데, 별은 ‘스타’(star)라고 할 때 정말 별 같아요. 프랑스어 에투알(étoile)도, 독일어 슈테른(Stern)도 아닌 것 같아요. 스타아~라고 하면 별빛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는 것 같아요.” 나는 별이란 말을 참 좋아했지만, ‘스타아~’라고 발음하면서까지 강조하신 선생님의 주장도 그럴듯했다.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언어의 세계화도 많이 되었다. 휴대폰 같은 합성 단어도 친근해졌다. 한편 고유한 우리말의 멋과 맛을 되살리려는 노력도 있다. 다른 한편 ‘캐치 미 이프 유 캔’처럼 외국어 문장을 통째로 음차해서 영화 제목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언어 사용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말을 잘 알아야 할 것 같다. 외래어 가운데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원래 어려운 개념어이지만 “아이러니 왜 이러니”처럼 대중적 노랫말의 운율에 어울린 경우도 있고, 아파트와 버스처럼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경우도 있으며, 디자인, 패러다임, 디지털, 로봇처럼 나름의 역사·철학·과학적 발생 이유를 담고 있어서 우리말로 순화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있다. 말의 깊이와 넓이를 알면 그 말을 더욱 맛깔나게 쓸 것 같다. 말의 의미를 일상의 사료 삼아 우리 삶을 반추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삶이 여러모로 풍족해질 것 같다. 그런 말들을 탐방해보기로 했다.

첫번째 탐방 대상으로 ‘바이러스’는 어떨까. ‘하필 왜?’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긴 바이러스(virus)라는 말이 독극물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으니 호의적일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삶에 가장 밀착한 단어는 ‘바이러스’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코로나19는 어떻게 해서든 사람이라는 숙주에 달라붙으려고 하면서도 사람들 사이는 잔뜩 떼어놓는다. 어떤 때는 우리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 갈등을 일으키며 다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상파울루 주지사의 말은 브라질 대통령(자이르 보우소나루)에게는 모욕적이지만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보우소나루 바이러스와도 싸우고 있다.” 바이러스는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문화 매체를 통해서도 반성의 기회를 갖고자 했다. 9년 전 개봉되었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은 코로나19 감염 위기 상황 속에서 다시 인기를 끌었다. 영화는 실용적 조언뿐만 아니라 깊은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피상적이자 동시에 심층적이다.

우선 실용적 조언이 중요하다. 철학자 스피노자에겐 미안하지만, 우리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 하루를 건강히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바이러스가 편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바이러스는 어디에서든 만만한 숙주를 노리고 있다. 소더버그 감독은 자극적 영상을 절제하며 전염병이 유발한 일상의 사건들을 연출해낸다. 특별한 주연 없이 각자의 처지에서 모두가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건의 발단이 된 첫 감염자와 그 아들의 죽음 외에는 죽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이런저런 부도덕한 행위를 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유일한 사망자는 비극적이지만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진정으로 헌신하는 미어스 박사(케이트 윈즐릿 분)다.

그는 바이러스 확산의 핵심이 포마이트(fomite), 곧 ‘비생체 접촉 매개물’임을 말뜻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공무원들에게 역설한다. “사람들은 하루에 2천~3천번 정도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집니다. 깨어 있는 동안 매분 네댓번 정도 만지는 셈이지요. 그 손으로 문손잡이, 승강기 버튼, 수도꼭지 등등 수많은 물체를 또 만지지요. 이 물체들이 포마이트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위 사람이 얼굴을 손으로 만질 때마다 주의를 준다. 하지만 막상 자신은 방을 정리해준 호텔 직원이 만진 침구에서 자고 일어난 날 아침에 감염되었음을 감지한다.

이제 피상에서 심층으로 가보자. 비생체 접촉 매개물의 개념은 16세기에 이탈리아 의사 프라카스토로에 의해 알려졌다. 그는 불쏘시개라는 뜻의 라틴어 포메스(fomes)를 술어로 사용했는데, 박테리아나 곰팡이균 같은 생체가 살 수 없는 조건에도 감염 매체가 있음을 가정하게 되었다. 이는 생체가 아닌 초미시적 어떤 존재가 불쏘시개 같은 감염 매체가 되어 병을 급속히 확산시킬 가능성을 의미했다.

바이러스는 정체불명이다. 생물도 아니고 광물도 아니다. ‘반생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순 화학물질과 생명체의 중간쯤에 있다. 모호하기 짝이 없다. 바이러스는 그 자체로는 번식활동도 대사활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기 맘에 드는 숙주를 만나면 빠르게 증식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확실히 분류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인간에게만 정체불명이다. 인간이 생물과 광물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는 ‘엔(n)개의 정체불명 존재’들이 있다. 바이러스는 오히려 물질과 생명이 별개가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 연속선상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오늘날 미생물학과 전염병학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프라카스토로는 코페르니쿠스가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때 동료이자 친구였다. 코페르니쿠스는 거시 세계의 진실을 알리면서 인류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고 한다. 인류의 본거지인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프라카스토로는 미시 세계의 극미한 존재들이 인류의 자존심에 또 다른 상처를 줄 것을 미리 내다보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

김용석 ㅣ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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