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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종부세 강화, 정말 7월엔 가능할까 / 석진환

등록 2020-07-08 18:36수정 2020-07-09 02:39

석진환 ㅣ 이슈 부국장

4년을 같은 집에 무사히(?) 세 들어 살았으나, 나 역시 이번 전셋값 상승장을 피해가지 못했다. 집주인은 코로나19로 사업이 어려워져 목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집이 두 채였던 집주인은 내가 세 든 집을 파는 걸 고려했는데, 고심 끝에 전세를 올려받고 대출 등으로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부동산 사장님이 귀띔했다. 나는 이사를 택했다.

세입자인 내 처지와 별개로, 집주인의 선택은 합리적이었다. 전셋값과 집값은 계속 치솟고, 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이고, 집 두 채에 내는 세금은 감당할 만하다. 그 집에 살았던 4년 동안 내가 일을 해서 번 돈의 총합보다, 같은 기간 그 아파트가 집주인에게 안겨준 집값 상승분이 두 배쯤 많다. 효자 같은 집을 팔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같은 가격에 새로 얻은 전셋집 주인을 만나서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집주인=나보다 연배가 위인 중장년’이라는 내 머릿속 당연한 공식이 그날 깨졌다. 나보다 젊은 집주인과 계약서를 쓰며 느낀 감정이 부러움이었는지 열패감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기분이 묘했다. 공인중개사 사무실이란 곳이 수많은 이들의 낙담과 안도, 희비가 교차하는 복잡한 공간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정책 실패에 책임이 있는 정부 여당은 이미 ‘무능’ 딱지를 떼기 어려울 만큼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집값 급등이 온전히 정책 탓만도 아닌데 이미 만신창이가 된 정부 여당이 어떨 땐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딱 거기까지. 기자로서든 생활인으로서든 옹호할 마음은 없다.

언론에 공개된 고위공직자·여당 의원들의 주택 소유 현황에서 보듯, 그들 모두 집에 관한 보통의 욕망을 갖고 있다. 편히 쉴 집을 갖고 싶은 마음. 더 쾌적하고 직장 가까운 집으로 갈아타고 싶은 마음. 기왕이면 더 오를 것 같은 동네의 ‘똘똘한 한 채’를 쥐고 싶은 마음. 월급 모아 집 사기 어려울 자식한테 집 한 채 물려줬으면 하는 마음.

합리적 경제활동인지 과욕인지 또는 투자인지 투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이런 마음들은 대체로 누구나 갖고 있다. 그래서 투기꾼 아니더라도 수도권 아파트는 언제나 수요 초과다. 부동산 정책이 어려운 건 이 때문이다. 아파트를 원하는 이들은 자식 교육과 노동 조건, 삶의 질, 노후 전망 등 욕망의 총체로서 집을 상대한다.

그런데 지금껏 정부 여당은 그저 가진 돈의 수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훈계성 수요 억제책’에 더 관심이 많았다. “아파트 양도 차익으로 터무니없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도록 하겠다.” 비난이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8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했다는 이런 도덕적인 표현들이 그런 사례다. 양도 차익을 기대했던 이들을 집값 폭등의 주범처럼 싸잡아 대하는 건 곤란하다. 조만간 집을 팔겠다는 다주택 고위공직자나 여당 의원들이 누리게 될 ‘터무니없는 양도 차익’은 어떻게 설명하려고 그러는 걸까.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정부 여당은 그동안 부동산 대책의 핵심인 세제 개혁을 외면해왔다. 종합부동산세로 대표되는 보유세는 집을 둘러싼 욕망을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는 비교적 일관되고 공정한 기준이다. 다주택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금이다.

시민단체들이 고위공무원과 국회의원들에게 한 채만 남기고 팔라고 요구하는 것도, 결국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세제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의심 때문이다. 부동산 기득권 카르텔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 여야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걸 우리는 지금껏 너무 많이 봐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176석 거대 여당이 7월 중에 종부세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쉽지 않을 것이다. 종부세 강화를 반대하는 미래통합당이 손 놓고 있을 리 없다. 공수처 법안 등 여야의 여러 현안이 함께 취급되면서 과거 다른 법안들처럼 비틀리고 축소돼 껍데기만 남을 수도 있다. 여당이 이번엔 그동안 검찰개혁을 위해 기울였던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종부세 개정안에 쏟아주길 바란다. 그러면 가능하다.

먼 훗날 우리나라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0.167%)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0.396%, 2017년 기준) 정도로 정착된다면, 그땐 누구도 다주택 국회의원·공직자에게 집을 팔라는 촌스러운 주장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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