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l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1998년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볼품없는 중세의 기도서 양피지가 200만달러에 팔렸다. 양피지가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던 옛날 기록된 것을 지우고 다른 내용으로 채우는 일은 일상이었다. 재생된 양피지를 가리키는 단어 ‘팰럼프세스트’의 존재 자체가 그런 과정이 흔한 일이었음을 증명한다. 그 자료도 기도서 밑에 지워졌던 내용 때문에 파격적인 가격에 낙찰되었다. 잊힌 아르키메데스의 수학을 담은 그 문서는 엄밀히 말해 ‘아르키메데스 팰럼프세스트’라 불려야 하나 일반적으로 ‘아르키메데스 코덱스’로 통용된다.
구매자는 익명의 갑부였다. 자료의 내용은 몰라도 중요성은 알고 있던 그는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통상적인 개인 소장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국립기관이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개인의 재산이 될 경우, 수학을 넘어 인류 역사의 신비를 풀 실마리 한 가닥이 공공의 영역에서 사라질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볼티모어에 소재한 월터스 미술관의 희귀본 담당 큐레이터 윌리엄 노엘은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 구매자의 대변인에게 자신의 미술관에서 그 자료를 전시할 수 있겠느냐고 편지를 보냈다. 그 구매자는 허락을 넘어 그 자료의 복원과 전시에 소요될 모든 비용을 훨씬 상회하는 금액으로 대답했다.
<아르키메데스 코덱스>는 실제적으로 그 자료를 복원하는 역사적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라고 말할 수 있다. 윌리엄 노엘이 스탠퍼드대학교의 철학과 고전학 교수 레비엘 네츠와 함께 집필한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둘이서 한 장절씩 번갈아 집필한 것이다. 한 장에서 노엘이 그 문서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밝히면 다음 장에선 네츠가 거기에 개재되어 있는 수학의 진실을 설명한다. 자연을 수학의 언어로 풀어내려 했던 뉴턴의 선구가 아르키메데스였음을 이 책에서는 회자되는 전설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곧 출간될 이 책 번역자의 공들인 작업에 경의를 표한다.